런던 내셔널 갤러리는 13세기부터 20세기까지의 유럽 미술의 명작들을 감상할 수 있는 곳이에요. 추천하는 작품 10가지는 다음과같습니다.
- 레오나르도 다 빈치의 암굴의 성모
- 쉐라의 아스니에르에서의 물놀이
- 고흐의 해바라기
- 한스 홀바인의 대사들
- 베르메르의 비리지날앞에선 여인
- 렘브란트의 자화상
- 티치안의 바쿠스와 아리아드네
- 벨라스케스 거울앞에 비너스
- 자코포 틴토레토의 은하수의 기원
- 존컨스타블의 건초마차

♟️내셔널갤러리(런던)
1250~1500
🇮🇹 조토
Giotto di Bondone
1267~1337

🎨성령강림절 (52)
Pentecost
🔗성령강림절
조토 다 본도네는 13~14세기에 활동한 이탈리아의 화가이며, 이탈리아 르네상스 미술의 선구자로 간주됩니다. 조토는 비잔틴 양식에서 벗어나 자연주의적이고 인간적인 표현을 추구하였으며, 공간감과 입체감, 인물의 감정과 동작 등을 혁신적으로 표현하였습니다. 조토는 프레스코화와 패널화를 주로 그렸으며, 그의 작품은 성서적인 이야기와 신화적인 이야기를 주제로 하였습니다.
Pentecost는 1300년경에 이탈리아의 화가 조토 다 본도네와 그의 제자들이 그린 유화 작품입니다. 이 작품은 성경에서 전하는 성령강림절의 장면을 표현한 것으로, 예수의 제자들과 성모 마리아가 모여 있을 때 하늘에서 화염 같은 형상이 내려와 그들의 머리 위에 머물면서 성령이 강림하였다는 사건입니다.
조토는 이 작품을 통해 자신의 예술적 재능과 혁신성을 보여주었습니다. 조토는 비잔틴 양식에서 벗어나 자연주의적이고 인간적인 표현을 추구하였으며, 공간감과 입체감, 인물의 감정과 동작 등을 혁신적으로 표현하였습니다. 조토는 특히 단축법, 투시법과 명암을 이용하여 평면에 빛과 그림자의 효과를 주었습니다. 이러한 기법은 이후의 르네상스 미술에 큰 영향을 미쳤습니다. 조토는 이탈리아 르네상스 미술의 선구자로서, 중세의 종교적인 예술에서 벗어나 인간 중심의 예술을 창조하였습니다.
🇮🇹 두치오
Duccio di Buoninsegna
1255~1317

장님의 눈을뜨게해준예수그리스도(52)(14)
The Healing of the Man born Blind
🔗장님의 눈을뜨게해준예수그리스도
장님의 눈을 뜨게 해준 예수 그리스도는 이탈리아의 르네상스 화가 두치오가 그린 성화입니다. 이 작품은 13세기에 살았던 장님이라는 시인의 실화를 바탕으로 하였습니다. 장님은 어릴 때부터 시를 쓰고 음악을 좋아했으나, 어느 날 갑자기 눈이 멀어버렸습니다. 그는 절망에 빠져 삶의 희망을 잃었습니다. 하지만 예수 그리스도의 자비로운 은총을 받아 다시 한 번 시를 쓰고 음악을 연주할 수 있는 기회를 얻게 되었습니다. 이 작품은 그와 같은 기적적인 이야기를 담고 있습니다.
작품의 왼쪽에는 장님이 앉아 있는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그는 손에 시집을 들고 있으며, 눈이 멀었다는 것을 나타내기 위해 두 눈을 감고 있습니다. 그의 옆에는 예수 그리스도가 서 있으며, 손으로 장님의 머리를 만지고 있습니다. 이는 예수 그리스도가 장님에게 시와 음악의 재능을 되찾게 해주었다는 것을 상징합니다. 작품의 오른쪽에는 성모 마리아와 성 요한, 성 바울, 성 도미니코, 성 피에트로 마르티레 등 여러 성인들이 서 있습니다. 그들은 장님과 예수 그리스도를 바라보며 감격과 존경의 표정을 짓고 있습니다. 이 작품은 두치오가 1310년경에 완성한 것으로 추정됩니다.

성도미닉과 성아래와 함께있는 성모자(52)
The Virgin and Child with Saint Dominic and Saint Aurea, and Patriarchs and Prophets
🔗성도미닉과 성아래와 함께있는 성모자
성도미닉과 성아래와 함께있는 성모자는 이탈리아의 르네상스 화가 두치오가 그린 성화입니다. 이 작품은 1310년경에 완성되었으며, 현재는 내셔널 갤러리의 세인즈베리관에 전시되어 있습니다. 이 작품은 성모 마리아와 아기 예수, 그리고 두 명의 성인들과 여러 선지자들이 함께 있는 장면을 그렸습니다. 왼쪽에는 성도미닉이 서 있으며, 오른손에 장미빛 수레를 들고 있습니다. 이는 그가 장미빛 수레를 통해 성모 마리아의 계시를 받았다는 전설을 상징합니다. 오른쪽에는 성아래가 앉아 있으며, 왼손에 꽃다발을 들고 있습니다. 이는 그가 꽃을 사랑했고, 꽃을 통해 예수의 사랑을 전파했다는 것을 나타냅니다. 두 성인은 각각 예수와 마리아를 바라보며 존경과 헌신의 표정을 짓고 있습니다. 작품의 상단에는 다윗, 모세, 이사야, 예레미야 등 여러 선지자들이 나타나 있으며, 그들은 예수의 탄생과 구원의 역사를 예언하거나 증언하고 있습니다.
이 작품은 두치오가 성화를 위한 새로운 형식을 개발한 것으로 평가받고 있습니다. 그는 기존의 비잔틴식 성화와 달리 인물들의 감정과 움직임을 자연스럽게 표현하였으며, 공간과 광원을 정교하게 처리하였습니다. 또한 그는 삼면화첩식으로 작품을 구성하여 중앙판과 양쪽 날개판이 조화롭게 연결되도록 하였습니다. 이 작품은 두치오의 대표작 중 하나로 간주되며, 이탈리아 르네상스 화법의 발전에 큰 영향을 미쳤습니다.
🇮🇹우첼로
Paolo Uccello
1397~1475

산노마노 전투 (55)
Niccolò Mauruzi da Tolentino at the Battle of San Romano
🔗산노마노 전투
우첼로의 산마리노 전투는 15세기 이탈리아의 피렌체와 시에나 사이에 벌어진 전투를 그린 성화 연작입니다. 이 작품은 피렌체의 화가 파올로 우첼로가 1435년부터 1460년 사이에 완성했으며, 원근법과 단축법을 적용한 초기 르네상스 화법의 특징을 보여줍니다. 이 작품은 원래 세 부분으로 구성되어 있었으나, 메디치 가문의 몰락 이후에 각각 다른 미술관으로 분산되었습니다. 현재는 런던의 내셔널 갤러리, 피렌체의 우피치 미술관, 파리의 루브르 박물관에 각각 소장되어 있습니다. 이 작품은 전쟁의 현장을 화려하고 장식적인 방식으로 표현하였으며, 인물들의 감정과 움직임을 자연스럽게 표현하였습니다. 또한, 작품 속에는 토끼와 노루와 같은 동물들이 나타나기도 하여 중세적인 취향도 엿볼 수 있습니다. 이 작품은 우첼로의 대표작 중 하나로 간주되며, 이탈리아 르네상스 화법의 발전에 큰 영향을 미쳤습니다.

성게오로니스와 용 (14)
Saint George and the Dragon
🔗성게오로니스와 용
성게오로니스와 용은 파올로 우첼로가 1470년경에 그린 성화입니다. 이 작품은 성게오로니스가 창으로 용을 찌르고 공주를 구하는 전설을 묘사하고 있습니다. 이 작품은 원근법과 단축법을 적용한 초기 르네상스 화법의 특징을 보여줍니다. 이 작품은 원래 비엔나의 랑코린스키 백작의 소유였으나, 1959년에 매각되어 현재는 런던의 내셔널 갤러리에 소장되어 있습니다. 이 작품은 시인 우르술라 에스캄 판솔프의 시와 일러스트 작가 존 테니얼의 거울 나라의 엘리스에 영감을 주었다고 합니다. 이 작품에 대해 더 자세히 알고 싶다면, 내셔널 갤러리의 공식 홈페이지나 유튜브 오디오 가이드북을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1500~1600
🇮🇹 보티첼리
Sandro Botticelli
1445~1510

비너스와 마르스 (14)
Venus and Mars
🔗비너스와 마르스
비너스와 마르스는 15세기에 활동한 이탈리아의 르네상스 화가 산드로 보티첼리가 그린 성화입니다. 이 작품은 그리스 로마 신화에 나오는 사랑의 여신 비너스와 전쟁의 신 마르스의 이야기를 묘사하고 있습니다. 비너스와 마르스는 불륜 관계에 있었으며, 이 작품은 그들이 사랑을 나눈 후에 잠든 모습을 보여줍니다. 비너스는 잠든 마르스를 조용히 바라보고 있으며, 그들의 주변에는 반인반마의 사티로스들이 마르스의 무기들로 장난을 치고 있습니다. 이 작품은 사랑이 전쟁을 이긴다는 메시지를 담고 있으며, 화려하고 섬세한 색채와 공간 표현이 뛰어납니다.
이 작품은 1485년경에 완성되었으며, 현재는 런던의 내셔널 갤러리에 소장되어 있습니다. 이 작품은 메디치 가문의 신혼 부부를 위해 주문된 것으로 추정되며, 비너스와 마르스의 모델은 메디치 가문의 줄리아노와 그의 애인 시모네타였다고 합니다. 이 작품은 보티첼리의 대표작 중 하나로 간주되며, 이탈리아 르네상스 화법의 발전에 큰 영향을 미쳤습니다.
🥇🇮🇹 레오나르도다빈치
Leonardo da Vinci
1452 – 1519

암굴의 성모 (9)
The Virgin with the Infant Saint John the Baptist adoring the Christ Child accompanied by an Angel (‘The Virgin of the Rocks’)
🔗암굴의 성모
암굴의 성모는 레오나르도 다빈치가 그린 유명한 종교화로, 성모 마리아와 아기 예수, 세례자 요한, 우리엘 천사가 동굴 속에서 만난 장면을 그린 것입니다. 이 그림은 두 가지 버전이 존재하며, 하나는 프랑스 파리의 루브르 박물관에, 다른 하나는 영국 런던의 내셔널 갤러리에 소장되어 있습니다.
암굴의 성모는 성경 외경에 나오는 이야기로, 헤롯왕이 2세 미만의 사내아이를 모두 죽이라고 명령한 핍박을 피해 피난을 간 성모자와 세례자 요한이 이집트에서 만난 상황을 그린 것입니다. 실제로 이들이 만났는지는 확실하지 않으며, 예술가들의 상상력에 의해 다양하게 표현되었습니다. 레오나르도 다빈치는 이 장면을 동굴 속에서 그렸으며, 동굴은 예수의 탄생과 부활을 상징하는 곳으로 해석되기도 합니다. 또한, 동굴은 레오나르도 다빈치가 어린 시절에 방문했던 토스카나 지방의 동굴에서 영감을 받았다고도 합니다. 암굴의 성모는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대표작 중 하나로, 그의 예술적 재능과 천재성을 잘 보여주는 작품입니다.
🇩🇪 한스홀바인
Hans Holbein
1497~1543

대사들 (12)
Jean de Dinteville and Georges de Selve (‘The Ambassadors’)
🔗대사들
한스 홀바인의 대사들은 1533년에 그린 유명한 초상화입니다. 이 작품은 베네치아의 총독이었던 로렌조 지우스티니아니와 프랑스의 외교사절이었던 장 드 당트빌을 그린 것으로, 그들의 권위와 학식을 드러내고 있습니다. 작품의 배경에는 성마르코 대성당과 성마르코 광장이 나타나 있으며, 공간과 광원을 정교하게 표현하였습니다. 작품의 가운데에는 과학 도구와 책, 지구본 등이 놓인 선반이 있으며, 이들은 두 사람이 당시의 최신 과학지식과 예술을 탐구하는 지식인이었음을 상징합니다. 작품의 하단에는 이상하게 왜곡된 해골이 그려져 있는데, 이는 죽음과 허무를 상기시키는 것으로 해석되기도 합니다. 이 작품은 홀바인의 대표작 중 하나로 간주되며, 북방 르네상스 화법의 발전에 큰 영향을 미쳤습니다.
🇮🇹브론치노
Agnolo Bronzino
1503~1572

사랑과 시간의 알래고리 (9)
An Allegory with Venus and Cupid
🔗사랑과 시간의 알래고리
브론치노의 사랑과 시간의 알레고리는 16세기에 활동한 이탈리아의 르네상스 화가인 아그놀로 브론치노가 그린 유명한 성화입니다. 이 작품은 사랑의 여신 비너스와 그의 아들 큐피드가 키스하는 모습을 중심으로, 사랑이 가져다주는 여러 가지 의미와 결과를 상징적으로 표현하고 있습니다. 이 작품은 1544년부터 1545년 사이에 완성되었으며, 현재는 영국 런던의 내셔널 갤러리에 소장되어 있습니다.
이 작품은 브론치노가 피렌체의 궁정화가로 임명된 후에 그린 것으로, 메디치 가문의 코지모 1세와 그의 아들 프란체스코 1세에게 헌정된 것으로 추정됩니다. 이 작품은 당시 유행하던 매너리즘 화법을 따르고 있으며, 인물들의 긴 목과 긴 손가락, 왜곡된 자세, 차갑고 냉정한 표정 등이 그 특징입니다. 또한, 화려하고 섬세한 색채와 명암, 공간과 광원을 정교하게 표현하였습니다. 이 작품은 너무나 외설적이었기 때문에 수백 년 동안 극히 일부의 소장자에게만 공개되었으며, 수수께끼 같은 상징들을 넣어 복잡한 의미를 지니고 있어 지금까지도 해석이 분분합니다.
🇮🇹 미켈란젤로
Michelangelo Buonarroti
1475 – 1564

그리스도의 매장 (9)
The Entombment (or Christ being carried to his Tomb)
🔗그리스도의 매장
미켈란젤로의 그리스도의 매장은 16세기 초에 그린 미완성된 성화입니다. 이 작품은 십자가에서 내려진 그리스도의 시신을 석관에 매장하는 장면을 표현하고 있습니다. 이 작품은 목판 위에 템페라로 그려졌으며, 현재는 영국 런던의 내셔널 갤러리에 소장되어 있습니다.
이 작품은 미켈란젤로가 25세 즈음에 그린 것으로 추정되며, 그의 초기 작품 중 하나입니다. 이 작품은 고대 석관 부조에서 멜레아그로스의 도상을 참고하여 그리스도의 시신을 가장 밝게 표현하였습니다. 그를 들고 가는 사람들은 성모 마리아, 성 요한, 니고데모, 클로파스의 마리아 등으로 추정되며, 각자의 슬픔과 비탄을 표현하고 있습니다. 작품의 오른쪽에는 성모 마리아가 그려지다 만 채로 남아 있으며, 그 윗 부분에는 무덤이 그려질 예정이었던 공백이 있습니다.
이 작품은 미켈란젤로가 완성하지 못한 이유에 대해 여러 가지 설이 있습니다. 일부 연구자들은 미켈란젤로가 로마로 떠나기 전에 판매하거나 선물하기 위해 급하게 그린 것이라고 주장합니다. 다른 연구자들은 미켈란젤로가 자신의 작품에 만족하지 못하고 버린 것이라고 주장합니다. 아직 확실한 답은 없습니다.
🥇🇮🇹 라파엘로
Raffaello Sanzio
1483 – 1520

카네이션의 성모(12)
The Madonna of the Pinks (‘La Madonna dei Garofani’)
🔗카네이션의 성모
라파엘로의 카네이션의 성모는 16세기 이탈리아 르네상스를 대표하는 화가 라파엘로의 작품입니다. 성모 마리아와 아기 예수가 카네이션을 주고받는 모습을 그린 그림으로, 카네이션은 예수의 고난과 부활을 상징하는 꽃입니다. 라파엘로는 성모와 아기 예수 사이에 흐르는 부드러운 사랑의 감정을 우아하게 묘사하여 절제가 느껴지면서도 호소력 있는 명작으로 만들었습니다. 이 작품은 현재 영국의 런던 국립미술관에 소장되어 있으며, 2004년에는 3천만 파운드에 판매되려다가 정부의 개입으로 막혔다고 합니다.
이 작품은 라파엘로가 페루지아에서 피렌체로 이동한 시기에 그린 것으로 추정되며, 그의 스승 페루지노의 영향과 레오나르도 다 빈치의 영향이 공존하는 작품입니다. 이 작품은 원형 판넬에 그려진 작은 크기의 그림으로, 직경 27.9cm입니다. 그림의 중심에는 성모 마리아가 아기 예수를 품에 안고 있는 모습이 있습니다. 성모는 오른손으로 아기 예수의 몸을 감싸주고, 왼손으로 카네이션을 들고 있습니다. 아기 예수는 왼손으로 성모의 손을 잡고, 오른손으로 카네이션을 쥐고 있습니다. 성모와 아기 예수는 서로를 바라보며 애정과 평화를 나타냅니다.
그림의 배경은 성모와 아기 예수가 앉아 있는 침대와 창문을 통해 보이는 풍경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침대는 붉은색과 초록색의 커튼으로 장식되어 있으며, 커튼 사이로 창문이 보입니다. 창문 밖에는 산과 들판, 나무와 강이 있는 전형적인 이탈리아 전원 풍경이 펼쳐져 있습니다. 이러한 배경은 라파엘로가 레오나르도 다 빈치의 풍경화에 영향을 받았음을 보여줍니다.
그림의 색채는 밝고 화사하며, 성모와 아기 예수의 의상과 커튼, 풍경 등이 조화롭게 배치되어 있습니다. 성모는 붉은색 드레스와 파란색 망토를 입고 있으며, 아기 예수는 황금색 옷을 입고 있습니다. 이들의 의상은 고전적인 색상으로, 성모와 아기 예수를 거룩하고 숭고하게 표현합니다. 커튼은 붉은색과 초록색으로 되어 있으며, 이들은 각각 사랑과 생명을 상징합니다. 풍경은 청록색과 연두색으로 되어 있으며, 이들은 평화와 풍요를 상징합니다. 카네이션은 붉은색으로 되어 있으며, 이는 예수의 고난과 부활을 상징합니다. 이렇게 색상은 그림의 의미와 분위기를 강조하고 있습니다.
그림의 구도는 피라미드 형태로 되어 있으며, 이는 레오나르도 다 빈치의 구도법에 영향을 받았음을 보여줍니다. 성모와 아기 예수의 머리와 몸은 피라미드의 꼭대기와 밑변을 이루고 있으며, 이는 그들의 안정감과 균형감을 나타냅니다. 성모와 아기 예수의 눈, 코, 입은 그림의 중심선을 따라 배치되어 있으며, 이는 그들의 정면성과 집중력을 나타냅니다. 성모와 아기 예수의 손과 카네이션은 그림의 중심점을 찍고 있으며, 이는 그들의 사랑과 연대감을 나타냅니다.
그림의 명암은 미묘하게 처리되어 있으며, 이는 레오나르도 다 빈치의 명암법에 영향을 받았음을 보여줍니다. 성모와 아기 예수의 얼굴과 몸은 부드러운 빛과 그림자로 표현되어 있으며, 이는 그들의 입체감과 실재감을 나타냅니다. 성모와 아기 예수의 의상과 커튼은 강렬한 빛과 그림자로 표현되어 있으며, 이는 그들의 활력과 존재감을 나타냅니다. 풍경은 연한 빛과 그림자로 표현되어 있으며, 이는 그들의 원근감과 공간감을 나타냅니다.
라파엘로의 카네이션의 성모는 작지만 깊이 있는 의미와 아름다운 형식을 갖춘 작품입니다. 이 작품은 라파엘로의 초기 작품 중에서 가장 중요하고 유명한 작품으로 평가되며, 그의 후기 작품들에 이르는 예술적 발전의 기초가 되었습니다. 이 작품은 라파엘로의 예술적 재능과 인간성을 엿볼 수 있는 명작으로, 르네상스 예술의 고전주의와 인간주의를 대표하는 작품으로 간주됩니다.

알렉산드라의 카트리나 (26)
Saint Catherine of Alexandria
🔗알렉산드리의 카트리나

기사의 꿈(26)
The Dream of a Knight
🔗기사의 꿈
라파엘로의 기사의 꿈은 1504년경에 그린 작품으로, 르네상스 시대의 이탈리아 화가 라파엘로의 초기 작품 중 하나입니다. 이 그림은 현재 영국 런던의 내셔널 갤러리에 소장되어 있으며, 그림의 크기는 17 x 17 센티미터로 작은 편입니다. 이 그림은 라파엘로가 페루지아에서 피렌체로 이동한 시기에 그린 것으로 추정되며, 그의 스승 페루지노의 영향과 레오나르도 다 빈치의 영향이 공존하는 작품입니다.
이 그림은 한 기사가 잠든 채 자신의 삶을 결정할 수 있는 두 가지 길을 상징하는 두 여인에게 꿈속에서 방문을 받는 모습을 그리고 있습니다. 왼쪽에 있는 여인은 악덕(Vice)을 상징하며, 화려한 복장과 장신구를 착용하고 있습니다. 그녀는 기사에게 매혹적인 미소를 짓고 있으며, 기사의 손을 잡으려고 하고 있습니다. 오른쪽에 있는 여인은 미덕(Virtue)을 상징하며, 단정한 복장과 간소한 장신구를 착용하고 있습니다. 그녀는 기사에게 엄숙한 표정으로 바라보고 있으며, 기사의 어깨를 쓸어주고 있습니다. 기사는 이 두 여인 중에서 자신이 선택할 길을 고민하고 있는 듯한 모습입니다.
이 그림의 배경은 자연과 인공이 조화를 이루는 풍경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왼쪽에는 들판과 나무, 강과 산이 펼쳐져 있으며, 오른쪽에는 성과 도시, 다리와 성벽이 보여집니다. 이 배경은 기사가 선택할 수 있는 길을 상징하는 것으로 해석될 수 있습니다. 왼쪽은 자유롭고 쾌락적인 삶을, 오른쪽은 규율적이고 도덕적인 삶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배경은 라파엘로가 레오나르도 다 빈치의 풍경화에 영향을 받았음을 보여줍니다.
이 그림은 라파엘로가 자신의 예술적 신념과 삶의 방향을 정하는 과정에서 겪었던 갈등과 고민을 반영한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 라파엘로는 스승 페루지노의 전통적이고 조화로운 화법과 레오나르도 다 빈치의 혁신적이고 심리적인 화법 사이에서 자신만의 화법을 찾아가려고 했습니다. 이 그림은 그가 아직 어린 나이에도 불구하고 예술가로서의 성장과 성숙을 추구하고 있음을 보여줍니다.
라파엘로의 기사의 꿈은 작지만 깊이 있는 의미와 아름다운 형식을 갖춘 작품입니다. 이 작품은 라파엘로의 초기 작품 중에서 가장 중요하고 유명한 작품으로 평가되며, 그의 후기 작품들에 이르는 예술적 발전의 기초가 되었습니다. 이 작품은 라파엘로의 예술적 재능과 인간성을 엿볼 수 있는 명작으로, 르네상스 예술의 고전주의와 인간주의를 대표하는 작품으로 간주됩니다.

교황율리우스2세(12)
Portrait of Pope Julius II
🔗교황율리우스2세
라파엘로의 그림 교왕 율리우스 2세에 대해 설명해 드리겠습니다. 이 그림은 1511년과 1512년 사이에 라파엘로가 그린 것으로, 당시의 교황 율리우스 2세의 초상화입니다. 이 그림은 현재 런던의 내셔널 갤러리에 소장되어 있으며, 라파엘로의 초상화 작품 중에서 가장 유명하고 중요한 작품으로 평가됩니다.
이 그림은 교황이 의자에 앉아 있는 모습을 정면에서 보여줍니다. 교황은 붉은색과 황금색의 교복을 입고 있으며, 흰색 모자를 쓰고 있습니다. 교황의 얼굴은 턱수염을 기른 채로 표현되어 있습니다. 이는 교황이 볼로냐 전쟁에서 패배한 것에 대한 애도의 표시였습니다. 교황의 표정은 엄숙하고 권위적이며, 눈빛은 심각하고 날카롭습니다. 교황의 오른손은 자신의 가슴 위에 놓여 있으며, 왼손은 의자의 팔걸이에 걸쳐져 있습니다. 의자의 팔걸이에는 교황의 문장인 오크나무와 독수리가 새겨져 있습니다.
그림의 배경은 단순하고 어두운 색으로 되어 있습니다. 배경에는 창문이나 문과 같은 세부적인 요소가 없으며, 오직 의자와 교황만이 강조되어 있습니다. 이는 라파엘로가 교황의 인물성과 심리를 드러내기 위해 의도적으로 배경을 생략한 것으로 해석될 수 있습니다. 그림의 색채는 밝고 화려하지 않으며, 주로 붉은색과 갈색, 회색 등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이는 교황의 직책과 성격을 반영하는 것으로 보입니다.
그림의 구도는 피라미드 형태로 되어 있으며, 이는 레오나르도 다 빈치의 구도법에 영향을 받았음을 보여줍니다. 교황의 머리와 몸은 피라미드의 꼭대기와 밑변을 이루고 있으며, 이는 그의 안정감과 균형감을 나타냅니다. 교황의 눈, 코, 입은 그림의 중심선을 따라 배치되어 있으며, 이는 그의 정면성과 집중력을 나타냅니다. 의자와 문장은 그림의 대칭성과 조화를 만들어 줍니다.
그림의 명암은 미묘하게 처리되어 있으며, 이는 레오나르도 다 빈치의 명암법에 영향을 받았음을 보여줍니다. 교황의 얼굴과 몸은 부드러운 빛과 그림자로 표현되어 있으며, 이는 그의 입체감과 실재감을 나타냅니다. 의자와 문장은 강렬한 빛과 그림자로 표현되어 있으며, 이는 그의 활력과 존재감을 나타냅니다. 배경은 연한 빛과 그림자로 표현되어 있으며, 이는 그의 원근감과 공간감을 나타냅니다.
라파엘로의 교왕 율리우스 2세는 작지만 깊이 있는 의미와 아름다운 형식을 갖춘 작품입니다. 이 작품은 라파엘로의 초상화 작품 중에서 가장 중요하고 유명한 작품으로 평가되며, 그의 후기 작품들에 이르는 예술적 발전의 기초가 되었습니다. 이 작품은 라파엘로의 예술적 재능과 인간성을 엿볼 수 있는 명작으로, 르네상스 예술의 고전주의와 인간주의를 대표하는 작품으로 간주됩니다.
🇮🇹 자코포 틴토레토
Jacopo Tintoretto
1545~1546

⭐은하수의 기원 (9)
The Origin of the Milky Way
🔗은하수의 기원
틴토레토의 은하수의 기원에 대해 설명해 드리겠습니다. 이 작품은 1575년경에 캔버스에 유채로 그린 작품으로, 크기는 165 x 148 센티미터입니다. 현재 영국 런던의 내셔널 갤러리에 소장되어 있습니다. 이 작품은 헤라 여신의 젖이 은하수를 형성한다는 그리스 로마 신화의 내용을 표현한 것입니다.
신화에 따르면, 제우스는 자신의 아들 헤라클레스를 헤라의 젖을 먹이고 싶어서, 잠든 헤라의 가슴에 아이를 물렸습니다. 그러나 헤라가 깨어나서 제우스와 아이를 발견하고, 화가 나서 아이를 밀쳐냈습니다. 이때 헤라의 젖이 하늘로 튀어나가서 은하수가 되었다고 합니다.
틴토레토는 이 장면을 유머러스하면서도 에로틱하게 표현했습니다. 화면 가운데에는 벌거벗은 헤라와 제우스가 나타나 있으며, 제우스는 놀란 표정으로 아이를 잡고 있습니다. 아이는 헤라의 젖을 물고 있으며, 그의 입에서 젖방울이 떨어지고 있습니다. 화면 왼쪽 위에는 성 마가가 나타나 있으며, 그는 베네치아의 수호 성인으로, 이 작품의 주문자인 스쿠올라 그란데 디 산 마르코와 관련이 있습니다. 화면 오른쪽 위에는 독수리와 공작새가 나타나 있으며, 이들은 각각 제우스와 헤라의 상징동물입니다. 화면 아래에는 네 명의 큐피드가 나타나 있으며, 이들은 사랑과 욕망을 상징합니다.
틴토레토의 이 작품은 베네치아 화파 특유의 따뜻하고 조화로운 색상과 비교적 꼼꼼한 마무리를 보여줍니다. 이는 주문자의 취향에 맞춘 것으로, 이 작품은 신성로마제국 황제 루돌프 2세를 위해 그린 것입니다4. 루돌프 2세는 베네치아 화파의 작품을 좋아하였으며, 특히 티치아노와 베로네세의 작품을 많이 수집하였습니다. 틴토레토는 이 작품을 그릴 때 티치아노와 베로네세의 영향을 받았음을 보여줍니다.
틴토레토의 은하수의 기원은 작지만 깊이 있는 의미와 아름다운 형식을 갖춘 작품입니다. 이 작품은 틴토레토의 작품 중에서 가장 유명하고 중요한 작품으로 평가되며, 그의 후기 작품들에 이르는 예술적 발전의 기초가 되었습니다. 이 작품은 틴토레토의 예술적 재능과 인간성을 엿볼 수 있는 명작으로, 베네치아 르네상스의 고전주의와 인간주의를 대표하는 작품으로 간주됩니다.
🇮🇹 베로네제
Paolo Veronese
1528~1588

⭐알렉산더 앞에선 다리우스가족 (9)
The Family of Darius before Alexander
🔗알렉산더 앞에선 다리우스가족
이 작품은 1565년에서 1570년 사이에 캔버스에 유채로 그린 작품으로, 크기는 165 x 148 센티미터입니다.
이 작품은 헤라클레스의 후손이라고 주장한 마케도니아의 알렉산더 대왕과 페르시아의 다리우스 3세와의 전쟁을 배경으로 한 신화적인 장면을 표현한 것입니다. 기원전 333년에 벌어진 이수스 전투에서 알렉산더는 다리우스를 격파하고, 그의 가족들을 포로로 잡았습니다. 그러나 알렉산더는 그들을 존중하고 친절하게 대우했습니다. 이 작품은 알렉산더가 다리우스의 가족들을 방문하는 모습을 그린 것으로, 알렉산더는 헤파이스티온과 함께 화면 오른쪽에서 등장합니다. 화면 가운데에는 다리우스의 어머니 시시감비스가 앉아 있으며, 그녀의 오른쪽에는 다리우스의 아내 스타테이라와 딸들이 있습니다. 화면 왼쪽에는 성 마가가 나타나 있으며, 그는 베네치아의 수호 성인으로, 이 작품의 주문자인 스쿠올라 그란데 디 산 마르코와 관련이 있습니다.
베로네제는 이 작품에서 고대 역사를 현대 베네치아의 문화와 결합시켰습니다. 예를 들어, 인물들은 고대 페르시아나 마케도니아의 의상이 아니라, 당시 베네치아에서 유행하던 의상을 입고 있습니다. 또한, 배경은 고대 페르시아나 마케도니아의 건축물이 아니라, 당시 베네치아에서 볼 수 있는 건축물들을 보여줍니다. 이러한 방식은 베로네제가 역사를 단지 재현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시대와 장소에 맞게 재창조하는 것임을 보여줍니다.
베로네제는 이 작품에서 화려하고 조화로운 색상과 극적이고 역동적인 구도를 사용했습니다. 인물들은 밝고 다양한 색상의 의상을 입고 있으며, 배경은 청록색과 연두색으로 되어 있습니다. 이러한 색상은 베네치아 화파 특유의 색감을 보여줍니다. 인물들은 피라미드 형태로 구성되어 있으며, 이는 레오나르도 다 빈치의 구도법에 영향을 받았음을 보여줍니다. 인물들은 서로를 바라보거나 몸짓으로 소통하면서 감정과 상황을 전달합니다. 특히, 시시감비스는 알렉산더에게 자신의 아들 다리우스를 용서해 달라고 애원하는 듯한 표정과 자세를 취하고 있습니다.
베로네제의 알렉산더 앞에선 다리우스 가족은 작지만 깊이 있는 의미와 아름다운 형식을 갖춘 작품입니다. 이 작품은 베로네제의 작품 중에서 가장 유명하고 중요한 작품으로 평가되며, 그의 후기 작품들에 이르는 예술적 발전의 기초가 되었습니다. 이 작품은 베로네제의 예술적 재능과 인간성을 엿볼 수 있는 명작으로, 베네치아 르네상스의 고전주의와 인간주의를 대표하는 작품으로 간주됩니다.
⭐🇮🇹 티치아노
Tiziano Vecellio
1488~1576

바쿠스와 아드리안느 (29)
Bacchus and Ariadne
🔗바카스와 아드리안느
티치아노의 바카스와 아드리안느에 대해 알려드리겠습니다. 이 작품은 1520년에서 1523년 사이에 캔버스에 유채로 그린 작품으로, 크기는 191 x 176.5 센티미터입니다. 현재 영국 런던의 내셔널 갤러리에 소장되어 있습니다. 이 작품은 헤라 여신의 젖이 은하수를 형성한다는 그리스 로마 신화의 내용을 표현한 것입니다.
이 작품은 페라라 공작인 알폰소 데스테를 위해 제작한 신화 주제의 그림군의 하나로, 알폰소 데스테는 페라라에 위치한 자신의 팔라조에 고전 작품을 바탕으로 한 그림으로 장식한 카메리노 달라바스트로라는 방에 이 그림을 걸어 두었습니다. 작품 의뢰에 대한 선지급 보수는 라파엘로가 받았는데, 원래는 그가 바쿠스의 승리를 주제로 한 그림을 그리도록 위임을 받은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1520년에 라파엘로가 죽었을 때는 예비 선화만이 끝마쳐져 있었고, 티치아노가 대신하여 그림 제작을 위임받게 되었습니다.
이 작품은 바쿠스와 아리아드네의 사랑 이야기를 그린 것으로, 바쿠스는 포도주의 신이고, 아리아드네는 크레타 왕 미노스의 딸입니다. 신화에 따르면, 아리아드네는 자신을 도와준 테세우스와 함께 낙소스 섬으로 도망갔으나, 테세우스가 자신을 버려두고 떠났습니다. 아리아드네는 슬픔에 잠겨 있었지만, 바쿠스가 자신을 발견하고 사랑에 빠져 결혼하게 됩니다. 바쿠스는 아리아드네의 왕관을 하늘로 던져 별자리가 되게 하고, 자신과 영원히 함께 하겠다고 약속합니다.
티치아노는 이 장면을 화려하고 역동적인 화법으로 표현했습니다. 화면 가운데에는 벌거벗은 바쿠스가 나타나 있으며, 그는 짐승들로부터 아리아드네를 보호하고자 전차에서 뛰어내리는 모습입니다. 바쿠스의 오른쪽에는 그의 추종자들이 나타나 있으며, 그들은 포도주와 음악으로 축제를 즐기고 있습니다. 바쿠스의 왼쪽에는 아리아드네가 나타나 있으며, 그녀는 테세우스의 배를 보며 슬퍼하는 모습입니다. 아리아드네 위의 하늘에는 그녀의 왕관이 나타나 있으며, 이것은 바쿠스가 하늘로 던진 것으로, 별자리가 되었다고 합니다.
티치아노의 이 작품은 베네치아 화파 특유의 따뜻하고 조화로운 색상과 비교적 꼼꼼한 마무리를 보여줍니다. 이는 주문자의 취향에 맞춘 것으로, 이 작품은 신성로마제국 황제 루돌프 2세를 위해 그린 것입니다. 루돌프 2세는 베네치아 화파의 작품을 좋아하였으며, 특히 티치아노와 베로네세의 작품을 많이 수집하였습니다. 티치아노는 이 작품을 그릴 때 티치아노와 베로네세의 영향을 받았음을 보여줍니다.
티치아노의 바카스와 아드리안느는 작지만 깊이 있는 의미와 아름다운 형식을 갖춘 작품입니다. 이 작품은 티치아노의 작품 중에서 가장 유명하고 중요한 작품으로 평가되며, 그의 후기 작품들에 이르는 예술적 발전의 기초가 되었습니다. 이 작품은 티치아노의 예술적 재능과 인간성을 엿볼 수 있는 명작으로, 베네치아 르네상스의 고전주의와 인간주의를 대표하는 작품으로 간주됩니다.
1600~1700
⭐ 얀 바 에이크
Jan van Eyck
1390~1441

아느놀피니 부부의 초상 (28)
Portrait of Giovanni(?) Arnolfini and his Wife
🔗아느놀피니 부부의 초상
아르놀피니 부부의 초상은 1434년에 얀 판 에이크가 그린 유명한 성화입니다. 이 작품은 플랑드르의 브루제에 거주하던 이탈리아 상인 조반니 디 니콜라오 아르놀피니와 그의 아내를 그린 것으로, 그들의 결혼식이나 기념을 상징하는 것으로 해석되기도 합니다. 이 작품은 서양 미술사에서 가장 독창적이고 복합적인 상징성을 가진 작품 중 하나로 평가받으며, 섬세하고 사실적인 환각법과 공간 표현이 놀라운 수준입니다.
이 작품에는 다양한 상징적인 요소들이 들어있습니다. 예를 들면, 부부가 손을 잡은 동작은 결혼을 통한 두 남녀의 화합, 아르놀피니가 오른손을 세운 자세는 혼인 서약, 둘 다 신발을 벗은 행위는 결혼의 신성함, 부부 발끝 사이의 작은 개는 충실함과 헌신을 상징합니다. 또한, 배경의 거울에는 작가 자신과 다른 한 명의 인물이 반사되어 있는데, 이는 그들이 결혼식에 참석한 증인이라는 의미일 수 있습니다. 거울 위에 쓰여진 ‘얀 판 에이크가 여기 있었다’라는 문구도 그를 증명합니다. 이 외에도 창문 밖의 체리나무, 여자의 드레스와 장신구, 방 안의 촛대와 꽃병 등에도 각각 의미가 담겨 있습니다.
이 작품은 얀 판 에이크가 유화를 사용하여 그린 초기 르네상스 화법의 대표작으로 간주됩니다. 그는 템페라 대신 유화를 사용하여 색감과 명암을 섬세하게 표현하였으며, 원근법과 단축법을 적용하여 실내 공간을 정교하게 재현하였습니다. 그는 또한 자신이 관찰한 현실세계를 사실적으로 묘사하면서도 상징적인 의미를 부여하는 방식으로 작품을 구성하였습니다. 이 작품은 이탈리아 르네상스 화법의 발전에 큰 영향을 미쳤으며, 후대의 많은 화가들에게 영감을 주었습니다.
🇮🇹프라이올로 형제
antonio del Pollaiuolo & Piero del Pollaiuolo
1432 – 1498

성세바스티노의 순교(00)
The Martyrdom of Saint Sebastian
🔗성세바스티노의 순교
프라이올로 형제의 성세바스티노의 순교는 15세기에 활동한 이탈리아의 르네상스 화가인 피에트로와 안브로지오 프라이올로 형제가 그린 성화입니다. 이 작품은 3세기에 로마 황제 디오클레티아누스의 박해를 받아서 죽음을 당한 성세바스티노의 순교를 묘사하고 있습니다. 성세바스티노은 로마 군인이었으나, 비밀리에 기독교를 믿고 있었습니다. 그는 군인들에게 그물을 쳐서 고문당하고, 화살에 맞아 죽은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이 작품은 성세바스티노이 화살에 맞은 상처를 보여주면서도, 그의 아름다운 몸과 얼굴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작품의 배경에는 로마의 건축물과 풍경이 나타나 있으며, 공간과 광원을 정교하게 처리하였습니다.
이 작품은 프라이올로 형제가 1475년경에 완성한 것으로 추정됩니다. 이 작품은 원래 피렌체의 산타 마리아 노벨라 대성당의 성세바스티노 채플을 장식하기 위해 주문된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18세기에 프랑스 왕 루이 15세가 이 작품을 구입하여 파리의 루브르 박물관으로 옮겼습니다. 이 작품은 프라이올로 형제의 대표작 중 하나로 간주되며, 이탈리아 르네상스 화법의 발전에 큰 영향을 미쳤습니다.
⭐🇮🇹 크리벨리
Carlo Crivelli
1430~1495

⭐수태고지 (15)
The Annunciation, with Saint Emidius
🔗수태고지
크리벨리의 수태고지는 15세기에 활동한 이탈리아의 르네상스 화가인 카를로 크리벨리가 그린 성화입니다. 이 작품은 성모 마리아가 하나님의 아들을 잉태하게 된 것을 알리는 천사장 가브리엘과의 만남을 묘사하고 있습니다. 이 작품은 1486년에 완성되었으며, 현재는 영국 런던의 내셔널 갤러리에 소장되어 있습니다.
이 작품은 아스콜리를 지배하고 있던 교황 식스투스 4세가 1482년 수태고지 축제에서 아스콜리의 자치를 허락하는 법령을 선포한 것을 기념하기 위해 그려졌습니다. 작품의 왼쪽에는 성모 마리아가 방안에서 꿇어앉은 모습으로 그려져 있으며, 오른쪽에는 천사장 가브리엘이 무릎을 꿇고 있다. 그들 사이에는 아스콜리의 수호성인인 성 에미디우스가 서 있으며, 손에는 도시의 모형을 들고 있습니다. 이는 교황이 도시에 특권을 부여한 것을 상징합니다. 작품의 상단에는 한 줄기 금빛이 마리아에게 닿아 있으며, 이는 성령이 마리아에게 내려와 아기 예수를 잉태시켰다는 것을 나타냅니다.
이 작품은 크리벨리의 대표작 중 하나로 간주되며, 그의 특유의 화법과 기법이 잘 드러납니다. 그는 엄격한 기하학적 구조와 정교한 원근법을 사용하여 공간을 표현하였으며, 섬세하고 화려한 색채와 명암을 사용하여 인물과 사물을 묘사하였습니다. 또한, 그는 작품 속에 다양한 상징적인 요소들을 넣어 의미를 부여하였습니다. 예를 들어, 공작은 화가의 실력을 증명할 수 있는 더할 나위 없이 좋은 기회일 뿐만 아니라 불멸과 성모 마리아의 승천을 상징합니다. 이 외에도 계단 끝의 어린 아이, 창문 위의 화분, 마리아와 가브리엘의 손동작 등에도 각각 의미가 담겨 있습니다.

성 히에로니무스와 성세바스티노와 함께한 성모자 (46)
La Madonna della Rondine (The Madonna of the Swallow)
🔗성 히에로니무스와 성세바스티노와 함께한 성모자
이 작품은 15세기 이탈리아의 화가 크리스토포로 다 코레가 (Cristoforo di Correggio)가 그린 목판에 유화 작품입니다. 크기는 76.5 x 60.5 cm이며, 런던 내셔널갤러리의 56번 홀에 전시되어 있습니다.
이 작품은 성모 마리아와 그녀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중심으로, 성 히에로니무스와 성세바스티노를 배치한 구성입니다. 성 히에로니무스는 기독교의 4대 교부 중 한 명으로, 성경을 라틴어로 번역한 것으로 유명합니다. 그는 작품에서 오른쪽에 서 있으며, 손에 든 책은 그가 번역한 라틴어 성경을 상징합니다. 성세바스티노는 로마의 군인이었으나, 기독교 신자로 밝혀져서 화살에 맞아 순교한 것으로 전해집니다. 그는 작품에서 왼쪽에 서 있으며, 가슴에 박힌 화살은 그의 순교를 상징합니다.
작품의 배경은 풍경과 건축물로 구분됩니다. 풍경은 이탈리아의 시골 풍경을 나타내며, 건축물은 로마의 유적을 나타냅니다. 작품의 오른쪽 위에는 콜로세움이 보이며, 왼쪽 위에는 트라야누스의 포럼이 보입니다. 이러한 배경은 작가가 로마에서 활동하였음을 암시합니다.
작가는 이 작품에서 인물들의 신체와 표정을 정교하게 묘사하였습니다. 인물들은 각자의 역할과 성격에 맞게 자세와 표정을 취하고 있습니다. 성모 마리아는 부드럽고 온화한 표정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안고 있으며, 예수 그리스도는 호기심과 친근함을 드러내며 관람자를 바라봅니다. 성 히에로니무스는 지혜와 겸손함을 나타내며 예수 그리스도를 숭배하는 모습을 보이고, 성세바스티노는 고통과 희생을 감내하며 예수 그리스도를 따르는 모습을 보입니다.
이 작품은 크리스토포로 다 코레가가 15세기 후반 이탈리아 르네상스 미술의 영향을 받아서 그린 것으로 추정됩니다. 작가는 인물들의 비례와 원근법을 정확하게 적용하였으며, 색채와 조명을 활용하여 공간감과 입체감을 표현하였습니다. 작가는 또한 인물들의 신성함과 인간적인 감정을 조화롭게 표현하여, 관람자에게 감동과 경외감을 주었습니다.
🇮🇹 벨리니
Giovanni Bellini
14430~1516

로렌다총독의 초상 (29)
Doge Leonardo Loredan
🔗로렌다총독의 초상 벨리니
로렌다총독의 초상은 15세기에 활동한 이탈리아의 르네상스 화가인 제안 벨리니가 그린 초상화입니다. 이 작품은 베네치아의 총독이었던 로렌조 지우스티니아니를 그린 것으로, 그의 권위와 품위를 드러내고 있습니다. 로렌다총독은 검은색의 공식복을 입고 있으며, 오른손에는 총독의 직무를 상징하는 지팡이를 들고 있습니다. 그의 얼굴은 나이와 경험을 반영하며, 심각하고 엄숙한 표정을 짓고 있습니다. 작품의 배경에는 베네치아의 대표적인 건축물인 성마르코 대성당과 성마르코 광장이 나타나 있으며, 공간과 광원을 정교하게 표현하였습니다.
이 작품은 1475년경에 완성되었으며, 현재는 영국 런던의 내셔널 갤러리에 소장되어 있습니다. 이 작품은 벨리니가 초상화를 위한 새로운 형식을 개발한 것으로 평가받고 있습니다. 그는 인물의 심리와 성격을 사실적으로 표현하였으며, 인물과 배경을 조화롭게 연결하였습니다. 또한, 그는 색감과 명암, 공간과 광원을 섬세하게 처리하여 입체감과 실감나는 효과를 주었습니다. 이 작품은 벨리니의 대표작 중 하나로 간주되며, 이탈리아 르네상스 화법의 발전에 큰 영향을 미쳤습니다.

동산에서의 고뇌(29)
The Agony in the Garden
🔗동산에서의 고뇌
The Agony in the Garden은 이탈리아 르네상스 시대의 걸작 화가 조반니 베르니니가 1459년부터 1465년 사이에 그린 작품입니다. 현재 영국 런던의 내셔널 갤러리에 소장되어 있습니다. 이 작품은 예수 그리스도가 유다에게 배반당하기 전에 게세마네 동산에서 기도하는 모습을 표현하고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주변에는 잠든 제자들과 다가오는 로마 병사들이 보이며, 하늘에는 천사가 나타납니다.
이 작품은 조반니 베르니니의 초기 작품으로, 그의 형수인 안드레아 만테냐가 그린 같은 제목의 작품과 밀접한 관련이 있습니다. 두 작품은 모두 조반니 베르니니의 아버지인 야코포 베르니니의 드로잉을 바탕으로 하였습니다. 조반니 베르니니는 이 작품에서 새벽 빛을 활용하여 장면에 신비로운 분위기를 더하였습니다. 인물들의 표정과 자세는 감정과 성격을 잘 드러내고 있으며, 배경의 풍경과 건축물은 로마의 유적을 나타냅니다.
이 작품은 조반니 베르니니가 베네치아파를 확립하는 데 기여한 작품 중 하나로 평가되며, 후대의 많은 화가들에게 영감을 주었습니다. 이 작품은 19세기 초까지는 크게 주목받지 못하였으나, 1863년에 내셔널 갤러리가 구입하면서 평판이 상승하였습니다3. 이 작품은 1914년에 여성 참정권 운동가인 그레이스 마콘이 훼손하려고 시도한 적이 있으나, 크게 손상되지는 않았습니다.
🇫🇷로렌의 클로드
Claude Gellée
1600~1682

이삭과 리브리가의 결혼 (36)
Landscape with the Marriage of Isaac and Rebekah (‘The Mill’)
🔗이삭과 리브리가의 결혼
로렌의 클로이드의 이삭과 리브가의 결혼에 대해 설명해 드리겠습니다. 이 작품은 1648년에 캔버스에 유채로 그린 작품으로, 크기는 136 x 169 센티미터입니다.
이 작품은 구약성서 창세기 24장에 나오는 이야기를 바탕으로 한 것입니다. 이야기에 따르면, 아브라함은 자신의 종 엘리에셀을 보내어 자신의 친척 나홀의 집에서 아들 이삭을 위한 신부를 찾게 했습니다. 엘리에셀은 메소보다미아의 우물가에서 리브가라는 아름다운 처녀를 만나고, 그녀가 자신과 약대들에게 물을 주는 모습을 보고서 그녀가 하나님께서 택하신 신부임을 알았습니다. 엘리에셀은 리브가의 부모와 형제들에게 자신의 목적을 말하고, 그들이 동의하자 리브가를 데리고 가나안 땅으로 돌아갔습니다. 이삭은 저녁 무렵에 들로 나와서 리브가를 보았고, 리브가도 이삭을 보았습니다. 그들은 서로 사랑하게 되어 결혼했습니다.
로렌의 클로이드는 이 장면을 화려하고 평화로운 풍경 속에 배치했습니다. 화면 왼쪽에는 엘리에셀과 리브가, 그리고 약대들이 나타나 있으며, 그들은 이삭을 만나러 가고 있습니다. 화면 오른쪽에는 이삭이 나타나 있으며, 그는 들판에서 묵상하다가 리브가를 발견하는 모습입니다. 화면 중앙에는 우물이 있으며, 그 주변에는 목자들과 양들이 있습니다. 화면 상단에는 구름이 흩어지고 햇빛이 비추는 하늘이 있으며, 그것은 하나님의 축복과 인도를 상징합니다.
로렌의 클로이드는 이 작품에서 바로크 시대 특유의 감정적인 표현과 극적인 조명을 사용하지 않았습니다. 대신, 고전주의적인 균형과 조화를 추구하였으며, 세밀하고 정교한 필치로 풍경을 묘사하였습니다. 그는 특히 색상과 공간감을 잘 다루었으며, 원근법과 대비법을 활용하여 깊이와 움직임을 표현하였습니다.
로렌의 클로이드의 이삭과 리브가의 결혼은 작지만 깊이 있는 의미와 아름다운 형식을 갖춘 작품입니다. 이 작품은 로렌의 클로이드의 작품 중에서 가장 유명하고 중요한 작품으로 평가되며, 그의 후기 작품들에 이르는 예술적 발전의 기초가 되었습니다. 이 작품은 로렌의 클로이드의 예술적 재능과 인간성을 엿볼 수 있는 명작으로, 바로크 예술의 감정주의와 역동주의를 예고하는 작품으로 간주됩니다.

시바여왕의 승선 (36)
Seaport with the Embarkation of the Queen of Sheba
🔗시바여왕의 승선
⭐🇳🇱베르메르
Johannes Vermeer
1632~1675

비리지날앞에선 여인 (25) (16)
A Young Woman standing at a Virginal
🔗비리지날앞에선 여인
베르메르의 비리지날 앞에선 여인에 대해 알려드리겠습니다. 이 작품은 1670년경에 캔버스에 유채로 그린 작품으로, 크기는 25.2 x 20.6 센티미터입니다. 현재 영국 런던의 내셔널 갤러리에 소장되어 있습니다.
이 작품은 베르메르가 남긴 작품 중 가장 작은 크기의 작품이며, 그의 마지막 작품으로 추정됩니다. 이 작품은 젊은 여인이 비리지날이라는 건반악기를 연주하고 있는 모습을 그린 것입니다. 여인은 연주에 집중하지 못하고 시선을 다른 곳으로 돌리고 있습니다. 창문을 통해 들어오는 빛이 그녀의 얼굴과 의상을 밝게 비추고 있습니다. 비리지날 옆에는 바이올라 다 가마라라는 현악기가 놓여 있습니다. 활이 현 사이에 놓인 것으로 보아 연주자는 아직 도착하지 않은 것 같습니다. 여인은 악보 대신 방문 쪽을 보면서 누군가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음악 선생님일까요? 아니면 연인일까요?
벽에는 작은 그림이 걸려 있습니다. 그림 속에는 매춘부가 류트라는 기타를 연주하고 있고, 모자를 쓴 남자가 그녀에게 돈을 주는 광경을 뚜쟁이 노파가 지켜보고 있습니다. 이 그림은 베르메르가 이전에 그렸던 <매춘부와 손님>이라는 작품의 축소판입니다. 이 그림은 여인의 순수함과 음악의 성스러움을 강조하기 위해 대조적으로 배치된 것으로 해석됩니다.
베르메르는 이 작품에서 카메라 옵스큐라라는 광학 도구를 사용한 것으로 보입니다. 카메라 옵스큐라는 어두운 상자 안에 구멍을 뚫어서 빛이 들어오게 하면, 상자 안쪽 벽에 구멍 반대편의 풍경이 뒤집혀서 나타나는 장치입니다. 베르메르는 이 장치를 통해 풍경을 관찰하고, 캔버스에 정확하게 옮겼습니다. 이 작품에서도 전경이 흐릿하게 표현되어 있는 것은 카메라 옵스큐라의 효과를 재현한 것으로 보입니다.
베르메르의 비리지날 앞에선 여인은 작지만 깊이 있는 의미와 아름다운 형식을 갖춘 작품입니다. 이 작품은 베르메르의 작품 중에서 가장 유명하고 중요한 작품으로 평가되며, 그의 후기 작품들에 이르는 예술적 발전의 정점을 보여줍니다. 이 작품은 베르메르의 예술적 재능과 인간성을 엿볼 수 있는 명작으로, 네덜란드 황금기 회화의 고전주의와 인간주의를 대표하는 작품으로 간주됩니다.
🇳🇱메인테르트 호메바
Meindert Lubbertszoon Hobbema
1638~1709

⭐가로수길(19)
The Avenue at Middelharnis
🔗가로수길
미델하르비스의 가로수길에 대해 알려드리겠습니다. 이 작품은 1689년에 캔버스에 유채로 그린 작품으로, 크기는 103.5 x 141 센티미터입니다.
이 작품은 네덜란드 황금기의 풍경화가 마인데르트 호베마(Meindert Hobbema)가 그린 작품으로, 네덜란드 남부에 있는 미델하르비스(Middelharnis)라는 작은 섬 마을의 모습을 그린 것입니다. 이 마을은 허방블리트(Haringvliet)라는 바닷물 수로와 메르베더(Merwede) 강이 만나는 곳에 위치해 있습니다. 이 작품은 호베마가 남긴 작품 중 가장 크고 정교한 작품으로, 그의 마지막 작품으로 추정됩니다
이 작품은 원근법과 소실점의 교과서 같은 그림입니다. 시골길 양옆으로 쭉 자란 가로수들이 지평선의 한 점에 모이면서 명쾌하게 원근법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원근법이란 사물과 사람의 거리에 따라 크기와 모양이 달라지는 현상을 표현하는 방법입니다. 이 방법을 사용하면 그림이 입체적이고 실감나게 보입니다
이 작품은 평온하고 정적인 분위기를 자아냅니다. 하늘은 구름이 흩어지고 햇빛이 비추는 모습으로, 하늘과 땅을 잇는 가로수들은 하늘을 배경으로 가볍게 흔들리고 있습니다. 길 양쪽으로 대칭을 이루며 들어선 가로수들은 안정감을 주며, 시선을 길 저 끝과 지평선이 만나는 곳으로 향하게 하여 감상자의 마음을 넓고 편안하게 합니다. 길 옆에는 작은 농가와 교회가 보이며, 몇몇 사람들과 동물들이 조용히 움직이고 있습니다. 마을의 구석구석을 돌아봐도 급하거나 서두르는 사람은 없어 보입니다. 모두가 풍경 속에서 여유롭게 살아가고 있습니다
미델하르비스의 가로수길은 작지만 깊이 있는 의미와 아름다운 형식을 갖춘 작품입니다. 이 작품은 호베마의 작품 중에서 가장 유명하고 중요한 작품으로 평가되며, 그의 후기 작품들에 이르는 예술적 발전의 정점을 보여줍니다. 이 작품은 호베마의 예술적 재능과 인간성을 엿볼 수 있는 명작으로, 네덜란드 황금기 회화의 고전주의와 인간주의를 대표하는 작품으로 간주됩니다.
🥇🇳🇱렘브란트
Rembrandt Harmenszoon van Rijn
1606~1669

벨사살의 연회(24)
Belshazzar’s Feast
🔗벨사살의 연회

사스키아(22)
Saskia van Uylenburgh in Arcadian Costume
🔗사스키아
시내가에 목욕하는여자(22)
A Woman bathing in a Stream (Hendrickje Stoffels?)
🔗시내가에 목욕하는여자
예순세살의 자화상
Self Portrait at the Age of 63
🔗예순세살의 자화상
서른네살의 자화상 (22)
Self Portrait at the Age of 34
🔗자화상 43
렘브란트의 자화상에 대해 알려드리겠습니다. 렘브란트는 17세기 네덜란드의 바로크 시대 화가로, 약 100점의 자화상을 남겼습니다. 그는 자신의 삶과 심리를 솔직하고 감각적으로 표현한 자화상으로 유명합니다. 그의 자화상은 그의 예술적 발전과 인간적 성장을 보여주는 역사적인 문서로도 간주됩니다.
렘브란트의 자화상은 그림, 에칭, 드로잉 등 다양한 매체와 기법으로 제작되었습니다. 그는 자신의 얼굴을 정면이나 측면에서 보여주기도 하고, 다양한 표정과 태도를 취하거나, 다른 인물이나 역할로 변장하기도 했습니다. 그는 또한 빛과 그림자, 색채와 명암, 붓질과 텍스처 등을 활용하여 자신의 심리상태와 감정을 풍부하게 전달했습니다.
렘브란트의 자화상은 그의 일생 동안에 걸쳐 제작되었으며, 그의 젊은 시절부터 노년기까지의 모습을 담고 있습니다. 그는 20대 초반에 첫 자화상을 그렸으며, 63세에 사망하기 직전까지 자화상을 그렸습니다. 그의 초기 자화상들은 자신감과 열정이 넘치는 모습을 보여주며, 그의 중기 자화상들은 성공과 부와 명예를 누리는 모습을 보여줍니다. 그러나 그의 후기 자화상들은 가족과 친구들의 죽음, 재정적인 어려움, 건강 문제 등으로 인해 고통과 비애에 젖은 모습을 보여줍니다. 그러나 그는 결코 포기하지 않고, 자신의 삶과 예술에 대한 깊은 성찰과 철학적인 태도를 보여줍니다.
렘브란트의 자화상은 미술사에서 가장 독특하고 중요한 작품 중 하나로 평가됩니다. 그는 자신의 얼굴을 단순히 형태적으로 재현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내면을 솔직하게 드러내는 예술적인 표현으로 승화시켰습니다. 그는 인간의 존재와 삶에 대한 진실과 깊이를 탐구하고, 인간성과 예술성을 결합시킨 걸작들을 남겼습니다.
🇧🇪루벤스
Peter Paul Ruben
1577~1640

파리스의 심판(18)
The Judgement of Paris
🔗파리스의 심판
루벤스의 <파리스의 심판>에 대해 알아보겠습니다. 이 작품은 1636년에 제작된 바로크 화가 루벤스의 대표작 중 하나입니다. 그림의 소재는 그리스 신화에서 트로이 전쟁의 발단이 된 사건인 파리스의 심판입니다. 파리스는 트로이의 왕자로 태어났지만, 트로이를 멸망하게 만든다는 예언 때문에 버려졌고, 목동으로 자라났습니다. 어느 날, 신들의 결혼 잔치에 초대되지 않은 불화의 여신 에리스가 ‘가장 아름다운 여신에게 주는’ 황금 사과를 던져놓았습니다. 이 사과를 놓고 헤라, 아테나, 아프로디테가 서로 다투었습니다. 제우스는 중재하기 위해 파리스에게 판정하게 하였습니다. 여신들은 다양한 선물을 약속하고 파리스를 매수하려고 했습니다. 헤라는 ‘아시아의 군주’ 자리를, 아테나는 ‘전투의 승리’를 주겠다고 제안했습니다. 그러나 결국 ‘가장 아름다운 여자를 주겠다’고 제의한 아프로디테가 승리를 얻었습니다. ‘가장 아름다운 여자’는 이미 스파르타의 왕 메넬라오스의 아내가 된 헬레네였습니다. 이것이 트로이 전쟁의 원인이 되었습니다.
루벤스는 이 신화적인 장면을 화려하고 감각적으로 표현했습니다. 그림의 중앙에는 벌거벗은 세 여신이 서 있습니다. 오른쪽부터 헤라, 아프로디테, 아테나입니다. 각각은 자신만의 색깔과 소품으로 구별됩니다. 헤라는 진한 자주색 옷과 공작새를, 아테나는 붉은색 옷과 방패와 창을, 아프로디테는 검정색 옷과 장미와 과일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림의 오른쪽에는 양치기 차림의 파리스가 있습니다. 그는 황금 사과를 쥐고 있지만, 표정은 시큰둥합니다. 그는 오른발을 뻗은 모양으로 우승자가 아프로디테라는 것을 가리키고 있습니다. 그 옆에 서 있는 헤르메스는 손으로 파리스의 발을 가르키며 이를 확인시켜 주고 있습니다.
그림의 왼쪽에는 나무에 몸을 숨긴 세 남자가 있습니다. 이들은 음탕한 숲의 정령 사티로스일 것으로 생각됩니다. 이들은 파리스의 결정 따위 아무런 관심도 없습니다. 여신의 벌거벗은 몸만을 보고 그것으로 만족하는 이들입니다. 하늘에서 한손에는 횃불을 다른 손에는 뱀을 쥐고 있는 여신은 복수의 여신 에리니에스입니다. 파리스의 심판과 직접적인 관련이 없는 이 여신이 그림에 등장한 것은 이 심판이후 벌어질 수많은 죽음의 순간을 암시하는 것 같습니다.
루벤스의 <파리스의 심판>은 바로크 회화의 특징을 잘 보여주는 작품입니다. 그는 인물들의 감정과 움직임을 생생하게 표현하고, 색채와 조명을 화려하게 사용했습니다. 그는 관능미와 역동성을 추구하는 환상적인 바로크 세계를 만들어냈습니다. 이 작품은 런던 내셔널 갤러리에 소장되어 있습니다

삼손과 데릴라 (18)
Samson and Delilah
🔗삼손과 데릴라
루벤스의 <삼손과 데릴라>에 대해 알아보겠습니다. 이 작품은 17세기 바로크 화가로 유명한 루벤스의 대표작 중 하나입니다. 그림의 소재는 구약성서에서 트로이 전쟁의 발단이 된 사건인 파리스의 심판입니다. 삼손은 이스라엘의 영웅으로, 신의 축복을 받아 초인적인 힘을 가졌습니다. 그는 이 힘으로 팔레스타인 사람들과 싸웠습니다. 그러나 그는 데릴라라는 여인에게 사랑에 빠졌습니다. 데릴라는 팔레스타인 사람들에게 뇌물을 받고 삼손의 힘의 비밀을 알아내려고 했습니다. 삼손은 여러 번 거짓말을 하다가 마침내 그의 힘이 머리카락에 있다고 말했습니다. 데릴라는 삼손이 잠든 사이에 그의 머리카락을 자르고, 팔레스타인 군인들에게 그를 넘겨주었습니다. 삼손은 힘을 잃고, 눈을 뽑히고, 옥에 갇혔습니다.
루벤스는 이 비극적인 장면을 화려하고 감각적으로 표현했습니다. 그림의 중앙에는 벌거벗은 삼손이 데릴라의 무릎 위에 평화롭게 잠들어 있습니다. 그의 몸은 근육질이고, 얼굴은 안심한 듯 보입니다. 그와 대조적으로, 데릴라는 옷을 거의 벗었지만, 얼굴은 차가운 표정을 짓고 있습니다. 그녀는 삼손의 어깨를 잡고 있지만, 손가락은 펴져 있으며, 시선은 밖으로 향하고 있습니다. 그녀는 이미 배신을 결심한 듯 보입니다. 그녀 옆에는 가위를 든 남자가 있습니다. 그는 삼손의 긴 머리카락을 자르고 있으며, 얼굴에는 만족감과 긴장감이 섞여 있습니다. 그리고 문 밖에는 팔레스타인 군인들이 대기하고 있습니다. 그들은 삼손을 체포하기 위해 준비하고 있으며, 일부는 창과 방패를 들고 있습니다.
그림의 배경은 어두운 색으로 칠해져 있으며, 조명은 인물들에게만 비춰져 있습니다. 이는 바로크 화풍에서 자주 사용되는 카라바지오식 조명법입니다. 이 조명법은 인물들의 형체와 감정을 부각시키고, 장면의 긴장감과 대비감을 높여줍니다. 또한 인물들의 색채도 화려하고 다양합니다. 삼손은 분홍색과 회색, 데릴라는 검정색과 붉은색, 가위 남자는 초록색과 갈색, 군인들은 파란색과 갈색 등으로 구분됩니다. 이러한 색채와 조명은 인물들의 성격과 역할을 나타내주기도 합니다. 예를 들어, 삼손은 분홍색과 회색으로 순수하고 힘센 인상을 주고, 데릴라는 검정색과 붉은색으로 악랄하고 유혹적인 인상을 줍니다.
루벤스의 <삼손과 데릴라>는 바로크 회화의 특징을 잘 보여주는 작품입니다. 그는 인물들의 감정과 움직임을 생생하게 표현하고, 색채와 조명을 화려하게 사용했습니다. 그는 관능미와 역동성을 추구하는 환상적인 바로크 세계를 만들어냈습니다. 이 작품은 현재 런던 내셔널 갤러리에 소장되어 있습니다
⭐🇪🇸벨라스케스
Diego Rodríguez de Silva y Velázquez
1599~1660

거울앞의 비너스(30)
The Toilet of Venus (‘The Rokeby Venus’)
🔗거울앞의 비너스
거울 앞의 비너스는 스페인의 바로크 화가 디에고 벨라스케스가 1647년에서 1651년 사이에 그린 유화 작품입니다. 이 작품은 스페인 미술사에서 드물게 여성의 누드를 다룬 작품으로, 그리스 신화의 사랑과 아름다움의 여신 비너스를 그린 것입니다
이 작품은 비너스가 침대 위에 누워있는 모습을 보여줍니다. 그녀는 우아하고 관능적인 자세로 몸을 펴고 있으며, 피부는 부드럽고 촉촉하게 표현되어 있습니다. 그녀의 머리카락은 길고 검은색으로, 붉은색과 회색의 실크 침대보와 대비됩니다. 그녀의 얼굴은 거울을 통해 보여지는데, 거울을 들고 있는 것은 그녀의 아들이자 연인인 큐피드입니다. 큐피드는 날개를 펴고 있으며, 손목에는 리본이 묶여 있습니다. 이는 비너스와 큐피드의 사랑과 결속을 상징합니다
그림의 배경은 어두운 색으로 칠해져 있으며, 조명은 인물들에게만 비춰져 있습니다. 이는 바로크 화풍에서 자주 사용되는 카라바지오식 조명법입니다. 이 조명법은 인물들의 형체와 감정을 부각시키고, 장면의 긴장감과 대비감을 높여줍니다. 또한 인물들의 색채도 화려하고 다양합니다. 비너스는 붉은 톤과 회색 톤으로, 큐피드는 분홍색과 초록색으로 구분됩니다. 이러한 색채와 조명은 인물들의 성격과 역할을 나타내주기도 합니다. 예를 들어, 비너스는 붉은 톤과 회색 톤으로 아름다움과 우아함을, 큐피드는 분홍색과 초록색으로 순수함과 활기를 표현합니다
이 작품은 벨라스케스가 이탈리아에서 영향을 받아 그린 것으로 추정됩니다. 벨라스케스는 1629년과 1649년에 두 번 이탈리아를 방문하면서 고대와 르네상스의 예술작품들을 연구하고 감상했습니다. 특히 베네치아 화가들의 누드 작품에 많은 영감을 받았습니다. 예를 들어, 티치아노의 <우르비노의 비너스>나 <다나에>, 조르조네의 <베니스와 마르스> 등이 그러합니다. 이러한 작품들은 신화적인 인물들을 다루면서도, 현실적이고 자연스러운 느낌을 주었습니다. 벨라스케스는 이러한 작품들을 모방하면서도, 자신만의 독창적인 스타일을 창조했습니다. 그는 인물들의 살결과 움직임을 생생하게 표현하고, 색채와 조명을 화려하게 사용했습니다. 그는 관능미와 역동성을 추구하는 환상적인 바로크 세계를 만들어냈습니다.
이 작품은 스페인의 첫 수상의 아들이자 후에 나폴리 총독이 된 마르케스 델 카피오엘리케의 주문을 받아 그린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그는 벨라스케스의 친구이자 후원자였으며, 이 작품을 자신의 침실에 걸었다고 합니다. 이 작품은 당시 스페인에서 매우 희귀한 누드화였기 때문에, 공개적으로 전시되지 않고 비밀리에 소장되었습니다. 19세기에 영국으로 넘어가면서 <로커비 비너스>라는 별명을 얻었으며, 1906년에 영국 국립 예술품 기금이 구입하여 런던 내셔널 갤러리에 소장되었습니다. 이 작품은 여러 번 파괴와 복원을 겪었으며, 많은 화가들과 예술가들에게 영감을 주었습니다.
⭐🇮🇹카라바조
Michelangelo Merisi da Caravaggio
1571~1610

엠마오에서의 저녁식사 (32)
The Supper at Emmaus
🔗엠마오에서의 저녁식사
카라바조의 <엠마오에서의 저녁식사>에 대해 알려드리겠습니다. 이 작품은 1606년에 그린 바로크 화풍의 유화 작품입니다. 그림의 소재는 신약 성서의 루카 복음에 나오는 부활한 예수님이 엠마오로 가는 두 제자와 함께 저녁을 먹는 장면입니다
이 작품은 예수님이 식탁 위의 음식을 축복하고 빵을 떼어 나누려는 순간을 묘사하고 있습니다. 이때 두 제자는 그가 부활한 예수님이라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곧 사라져 버립니다
이 작품은 카라바조의 특징인 테네브리즘, 즉 명암 대비를 통해 인물들의 형체와 감정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배경은 어두운 색으로 칠해져 있으며, 조명은 인물들에게만 비춰져 있습니다. 이로써 장면의 긴장감과 극적인 효과를 높여줍니다
인물들은 사실적이고 자연스럽게 표현되어 있습니다. 예수님은 수염이 없는 얼굴로 그려져 있으며, 이는 고대 교회의 성화에서 영감을 받았다고 합니다. 두 제자 중 한 명은 감상자 쪽으로 팔을 뻗으며 놀라움을 표현하고 있습니다. 이는 바로크 예술에서 자주 사용되는 수단으로, 보는 이를 작품에 동참시키려는 의도입니다. 다른 한 명은 손가락으로 조개껍질을 달고 있는데, 이는 성 야고보를 상징합니다.
식탁 위의 정물도 의미가 있습니다. 썩은 사과와 색이 변한 무화과는 인류의 원죄를, 석류는 그 원죄를 이긴 예수님의 부활을 상징합니다. 이러한 정물 묘사를 통해 카라바조는 저급한 장르와 고귀한 장르를 조화롭게 결합하였습니다.
이 작품은 현재 밀라노의 브레라 미술관에 소장되어 있습니다. 카라바조의 다른 작품들과 함께 바로크 회화의 명작으로 평가받고 있습니다.
1700~1900
🇬🇧윌리엄터너
Joseph Mallord William Turner
1775~1851

전함 테메레르호 (34)
The Fighting Temeraire tugged to her last berth to be broken up, 1838
🔗전함 테메레르호
🇬🇧컨스타블
John Constable
1776~1837

건초마차 (34)
The Hay Wain
🔗건초마차
🇫🇷폴 들라로슈
Paul Delaroche
1797~1856

제인그레이의 사형집행(45)
The Execution of Lady Jane Grey
🔗제인그레이의 사형집행
🇫🇷앵그르
Jean-Auguste-Dominique Ingres
1780~1867

무아시트 부인좌상(45)
Madame Moitessier
🔗무아시트 부인좌상
🇫🇷마네
Édouard Manet
1832~1883

튤리리공원의 음악회
Music in the Tuileries Gardens
🔗튤리리공원의 음악회
🇫🇷모네
Oscar-Claude Monet
1840~1926

라 그르누예르의 수영객들 (41)
Bathers at La Grenouillère
🔗라 그르누예르의 수영객들

수련
The Water-Lily Pond
🔗수련
🇫🇷쉐라
Georges Seurat
1859~1891

아스니에르의 물놀이 (43)
Bathers at Asnières
🔗아스니에르의 물놀이
쇠라의 아스니에르에서의 물놀이는 1884년에 완성된 점묘주의의 대표작으로, 프랑스 파리 근교의 센강 강변에서 여름날을 보내는 사람들의 모습을 그린 그림입니다. 이 그림은 쇠라가 처음으로 점묘법을 적용한 작품으로, 작은 색 점들을 보색대비로 배치하여 빛과 색채의 효과를 극대화하였습니다. 이 그림은 런던의 내셔널 갤러리에 소장되어 있으며, 크기는 300×200cm입니다.
이 그림의 배경은 아스니에르라는 센강 유역에 있는 지역으로, 19세기 후반에는 파리 시민들이 휴식과 오락을 즐기기 위해 찾던 곳이었습니다. 센강은 프랑스 중북부를 가로지르며 파리를 관통하는 긴 강으로, 프랑스 문화와 역사에 큰 영향을 미쳤습니다. 이 그림에서는 강을 가로지르는 철도 교량과 공장 굴뚝이 보이며, 산업화와 도시화의 흔적을 드러냅니다. 반면에, 강변에서는 다양한 계층과 성별, 연령의 사람들이 물놀이를 하거나 휴식을 취하고 있습니다. 이들은 모두 한자리에 있지만, 서로 소통하지 않고 고립되어 있는 모습을 보여줍니다. 이것은 근대 사회의 고독과 소외감을 표현한 것으로 해석됩니다.
이 그림의 인물들은 쇠라가 실제로 만난 사람들을 모델로 하여 그렸습니다. 예를 들어, 왼쪽 중앙에 앉아 있는 남자는 쇠라의 친구이자 화가인 에드몽드 크로스이며, 오른쪽 하단에 있는 소년은 쇠라의 동생인 에밀입니다. 또한, 오른쪽 중앙에 있는 남자는 쇠라가 존경하던 화가인 가스통 라투르이며, 그 옆에 있는 여자는 라투르의 연인인 앙젤리크입니다. 이들 인물들은 각자의 특징과 성격을 잘 반영하고 있습니다.
이 그림의 색채와 빛은 점묘법의 특징을 잘 보여줍니다. 점묘법은 작은 색 점들을 옆에 붙여서 그리는 기법으로, 보색대비를 이용하여 눈에서 색을 혼합하게 합니다. 이렇게 하면 더욱 밝고 화사한 색감과 입체감을 얻을 수 있습니다. 쇠라는 이 기법을 과학적으로 연구하고 발전시켰으며, 점묘주의라는 스타일을 창조했습니다. 이 그림에서는 하늘색과 주황색, 초록색과 분홍색 등 보색관계에 있는 색들이 많이 사용되었습니다. 또한, 빛과 그림자의 효과를 위해 밝은 색과 어두운 색을 적절히 배치하였습니다. 이렇게 하여, 쇠라는 한낮의 더위와 햇빛을 미묘하게 표현하였습니다.
이 그림의 구도와 리듬은 조화와 균형을 나타냅니다. 이 그림은 피라미드 형태로 구성되어 있으며, 성모 마리아와 같은 파란색 옷을 입은 남자가 정점에 위치합니다. 이 남자는 강변에서 가장 크고 중요한 인물로, 쇠라가 추구하는 이상적인 인간상을 상징합니다. 그의 왼쪽과 오른쪽에는 각각 다른 자세와 표정을 가진 인물들이 배치되어 있습니다. 이들 인물들은 선의 방향과 시선의 방향, 팔다리의 위치 등이 반복되어 리듬감을 만듭니다. 또한, 강변에 있는 옷의 색상이나 물 속에서 소년의 색상 등이 그룹화되어 대칭감을 만듭니다. 이렇게 하여, 쇠라는 자연과 인간의 관계를 조화롭고 균형있게 표현하였습니다.
쇠라의 아스니에르에서의 물놀이는 인상주의에서 벗어나 새로운 화법을 찾아가는 쇠라의 시도를 보여주는 작품입니다. 이 작품은 살롱에 출품되지 못했지만, 앙데팡당 전시회에 출품되어 많은 화가들에게 영향을 주었습니다. 특히, 폴 시뇨아크, 앙리 크로스, 폴 가규앵 등이 점묘법을 따라하고 발전시켰습니다. 쇠라는 이 작품 이후에도 점묘법을 완성하기 위해 노력하였으며, 그의 대표작인 <그랑 자트 섬에서 일요일 오후>를 그렸습니다. 그러나, 쇠라는 32세의 나이에 갑자기 사망하여 그의 예술적 재능을 완전히 발휘하지 못하였습니다.
🇫🇷세잔
Paul Cézanne
1839~1906

대수욕도(목욕하는사람들)
Bathers (Les Grandes Baigneuses)
🔗대수욕도(목욕하는사람들)
보지말라고해도 볼것들
🥇🇳🇱고흐
Vincent Willem van Gogh
1853~1890

해바라기(43)
Sunflowers
🔗해바라기
(반고흐미술관,메트로폴리탄미술관,내셔널갤러리)
설명안해도 지나가다가 보면 딱 이건고흐의 해바라기 그래서 픽에 안넣음

사이플러스나무가 있는 밀밭 (43)
🔗A Wheatfield, with Cypresses(1889)
고흐의 해바라기는 19세기 후반에 네덜란드 출신의 화가 빈센트 반 고흐가 그린 유명한 정물화 시리즈입니다. 고흐는 생전에 총 12점의 해바라기 그림을 그렸는데, 그 중에서 ‘꽃병에 꽂힌 해바라기’라는 주제를 기준으로 총 7점의 해바라기 그림이 있습니다. 이 7점의 그림은 모두 구도는 거의 똑같습니다만, 해바라기의 개수가 3개, 12개, 15개로 차이점이 있습니다. 이 그림들은 현재 세계 각지의 미술관과 개인 소장품으로 분산되어 있으며, 그 가치와 의미는 매우 높습니다.
고흐가 해바라기를 그리게 된 배경과 의도는 다음과 같습니다. 고흐는 1888년에 파리에서 남부 프랑스의 작은 도시 아를로 이사를 갑니다. 아를은 햇빛이 밝고 따뜻하며, 자연이 풍부한 곳이었습니다. 고흐는 이곳에서 자신만의 화법을 찾아가고자 했으며, 동료 화가들과 함께 예술가 공동체를 만들고자 했습니다. 특히, 평소에 존경하던 화가 폴 고갱과 함께 하고 싶었습니다. 긴 설득 끝에 고갱은 아를로 오겠다는 회신을 받은 고흐는 기뻐하면서, 자신의 작업실을 정성스럽게 꾸미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그가 꾸민 방법이 바로 해바라기 그림을 그리는 것이었습니다. 고흐는 자신의 방 벽에 크고 밝은 해바라기 그림을 걸어서, 고갱을 맞이하고자 했습니다. 고흐는 동생 테오에게 보낸 편지에서 다음과 같이 적었습니다.
“나는 너와 함께 살 것을 기대하고 있으며, 방의 장식을 만들고 싶다. 그것도 큰 해바라기만으로.”[1][1]
“나는 네가 보낸 돈으로 새로운 캔버스와 물감을 구입했다. 나는 해바라기를 그리고 있다. 네 개의 대형 패널에 꽃병에 꽂힌 해바라기를 그리고 있다. 나는 이것들을 내 방 벽에 걸어서, 고갱이 올 때까지 기다리려고 한다.”
“나는 내 방 벽에 걸린 네 개의 해바라기 패널을 보면서 매우 만족스럽다. 나는 이것들이 내가 지금까지 그린 가장 잘된 작품들이라고 생각한다.”
고흐가 그린 해바라기 그림은 다음과 같습니다.
- 첫 번째 해바라기: 1888년 8월 초에 완성된 첫 번째 해바라기 그림입니다. 꽃병에 꽂힌 15송이의 해바라기를 터키옥색의 배경에 그렸습니다. 해바라기는 다양한 색상과 형태로 표현되었으며, 물감을 두껍게 칠하여 입체감과 생동감을 주었습니다. 이 그림은 현재 개인 소장품으로, 공개적으로 전시되지 않고 있습니다.
- [두 번째 해바라기]: 1888년 8월 중순에 완성된 두 번째 해바라기 그림입니다. 꽃병에 꽂힌 12송이의 해바라기를 로열 블루색의 배경에 그렸습니다. 이 그림은 일본에서 개인 소장하고 있었으나, 제2차 세계대전 중인 1945년 8월 6일 공습으로 소실되었습니다.
- [세 번째 해바라기]: 1888년 8월 말에 완성된 세 번째 해바라기 그림입니다. 꽃병에 꽂힌 14송이의 해바라기를 청록색의 배경에 그렸습니다. 이 그림은 현재 독일 뮌헨의 노이에 피나코테크에 소장되어 있습니다.
- [네 번째 해바라기]: 1888년 8월 말에 완성된 네 번째 해바라기 그림입니다. 꽃병에 꽂힌 15송이의 해바라기를 노란색의 배경에 그렸습니다. 이 그림은 현재 영국 런던의 내셔널 갤러리에 소장되어 있으며, 가장 유명하고 인기있는 해바라기 그림입니다.
- [다섯 번째 해바라기]: 1889년 1월 초에 완성된 다섯 번째 해바라기 그림입니다. 세 번째 해바라기 그림의 재판으로, 꽃병에 꽂힌 14송이의 해바라기를 노란색의 배경에 그렸습니다. 이 그림은 현재 미국 필라델피아의 필라델피아 미술관에 소장되어 있습니다.
- [여섯 번째 해바라기]: 1889년 1월 중순에 완성된 여섯 번째 해바라기 그림입니다. 네 번째 해바라기 그림의 재판으로, 꽃병에 꽂힌 15송이의 해바라기를 노란색의 배경에 그렸습니다. 이 그림은 현재 네덜란드 암스테르담의 반 고흐 미술관에 소장되어 있습니다.
- [일곱 번째 해바라기]: 1889년 1월 말에 완성된 일곱 번째 해바라기 그림입니다. 네 번째 해바라기 그림의 복제품으로, 꽃병에 꽂힌 15송이의 해바라기를 연두색의 배경에 그렸습니다. 이 그림은 현재 일본 도쿄의 손보재팬 미술관에 소장되어 있습니다.
고흐가 해바라기를 그리는 화법과 의미는 다음과 같습니다. 고흐는 유화를 두껍게 칠해 해바라기의 강
나머지도 마저 알려드리겠습니다. 고흐는 유화를 두껍게 칠해 해바라기의 강렬하고 생동감 있는 색채와 형태를 표현했습니다. 고흐는 해바라기의 색상을 노란색과 보색인 보라색으로 대비시켜 빛의 효과를 주었습니다. 또한, 해바라기의 개수와 배치를 다양하게 바꿔서 그림의 리듬과 조화를 만들었습니다. 고흐는 해바라기를 그리면서 자신의 감정과 상상력을 자유롭게 표현했습니다.
고흐가 해바라기에 담은 의미는 다양합니다. 고흐는 해바라기를 자신의 상징으로 삼았으며, 자신의 삶과 예술에 대한 열정과 희망을 나타냈습니다. 고흐는 해바라기가 햇빛을 따라 돌아가는 것을 보고, 자신도 예술가로서 빛을 따르고 싶다고 생각했습니다. 고흐는 해바라기를 고갱에게 바치는 선물로 삼았으며, 자신의 우정과 존경을 표현했습니다. 고흐는 해바라기가 죽은 후에도 아름다운 색을 유지하는 것을 보고, 자신도 죽은 후에도 기억되고 싶다고 생각했습니다.
고흐의 해바라기는 인상주의에서 벗어나 새로운 화법을 찾아가는 고흐의 시도를 보여주는 작품입니다. 이 작품은 당시에 많은 비판과 무시를 받았지만, 후세에 많은 사랑과 존경을 받았습니다. 특히, 폴 가융, 폴 세잔, 마티스 등이 고흐의 해바라기에 영향을 받았습니다.
🇬🇧조지 스터브스
George Stubbs
1724 – 1806

휘슬재킷(34)
Whistlejacket
🔗휘슬재킷
이그림은 거의 내셔널갤러리의 마스코트같은 그림 워낙 커서 멀리서도 보이고 갤러리에서 안볼수없는 위치에 걸려있기때문에 픽에 포함안함 정말 내셔널 갤러리 저 끝에서도 보임
조지 스터브스의 <휘슬재킷>에 대해 알려드리겠습니다. 이 작품은 1762년경에 그린 유화 작품으로, 영국의 바로크 화가 조지 스터브스가 실물 크기로 그린 말 그림입니다. 이 작품은 로킹엄 후작이 의뢰한 것으로, 그의 경주마 휘슬재킷을 그린 것입니다. 휘슬재킷은 세계 경주마의 3대 시조에 속하는 고돌핀 아라비안의 손자로, 뛰어난 외모와 순종성을 가진 말이었습니다
이 작품은 휘슬재킷이 뒷다리로 서서 고개를 돌려 정면을 바라보는 모습을 보여줍니다. 그의 몸은 밤색으로, 갈기와 꼬리는 크림색으로 표현되어 있습니다. 그의 피부는 부드럽고 윤기가 나며, 근육과 뼈는 정확하고 섬세하게 묘사되어 있습니다. 그의 눈은 고고하고 당당하며, 우리에게 자유와 존엄을 묻는 듯합니다. 배경은 거의 비어 있으며, 오른쪽 아래에만 약간의 바닥이 보입니다. 이렇게 배경을 생략함으로써 화가는 말의 존재 자체를 강조하고, 그림에 깊이와 공간감을 주었습니다
이 작품은 스텁스가 말에 대한 해부학적 지식과 관찰력을 바탕으로 그린 것입니다. 스텁스는 어렸을 때부터 동물들을 스케치하면서 재능을 발휘했으며, 나중에는 병원에서 인체와 말의 해부에 참여하면서 정확한 드로잉들을 그렸습니다. 1766년에는 『말의 해부학 The Anatomy of the Horse』이라는 책도 출간했습니다. 이 책은 예술적이면서도 과학적인 가치가 있는 작품으로 인정받았습니다
이 작품은 스텁스가 화가로서 최고의 명성을 얻게 한 작품입니다. 당시 영국에서는 승마와 경마가 유행하고 있었으며, 부유한 귀족들은 자신의 말들을 그리도록 화가들에게 주문했습니다. 스텁스는 자신의 정확하고 사실적인 말 그림으로 많은 인기와 성공을 얻었습니다. 이 작품은 현재 런던 내셔널 갤러리에 소장되어 있으며, 바로크 회화의 명작으로 평가받고 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