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월 12, 2025

대영박물관 픽31

대영박물관은 세계에서 가장 크고 유명한 박물관 중 하나로, 역사와 문화의 보물들을 수집하고 전시하고 있습니다. 대영박물관에는 약 800만점의 소장품이 있어서 모두 다 볼 수는 없지만, 몇 가지 인기있고 중요한 작품들을 소개해드리겠습니다.

👣추천동선

♟️4실6실10실23실17실18실24실
♟️18실24실25실27실33실95실1실40실

♟️1실40실41실49실70실63실52실50실

♟️대영박물관

⭐이집트 조각상(4실)

♟️4실6실10실23실17실18실24실
🎧201~208

♟️로제타스톤(4실)

🔗로제타스톤(영문) 🎧204

로제타스톤은 고대 이집트의 성각문자, 민중문자, 그리스 문자로 쓰인 비석으로서, 고대 이집트문자의 해독에 큰 역할을 한 유물입니다. 이 비석은 기원전 196년에 이집트왕 프톨레마이오스 5세의 통치를 칭송하는 내용을 담고 있으며, 세 가지 언어로 동일한 내용이 적혀 있습니다. 이 비석은 1799년에 나폴레옹의 이집트 원정군이 로제타 마을에서 발견하였으나, 나폴레옹이 패배하면서 영국의 손에 넘어갔습니다.

로제타스톤의 중요성은 고대 이집트문자를 해독하는 데 있습니다. 고대 이집트문자는 기원전 4세기에 그리스화되면서 사라지게 되었으며, 그 의미와 발음은 오랜 시간 잊혀졌습니다. 로제타스톤은 성각문자와 그리스 문자가 동일한 내용을 담고 있다는 것을 알게 해주었으며, 그리스 문자를 통해 성각문자의 의미를 파악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특히, 프랑스의 학자 장 프랑수아 샹폴리옹은 로제타스톤을 연구하여 성각문자의 체계와 발음을 밝혀내었으며, 고대 이집트문화와 역사를 연구하는데 큰 도움이 되었습니다.

로제타스톤은 형태와 재료에 대해서도 흥미로운 점이 있습니다. 로제타스톤은 원래는 더 큰 비석의 일부였으나, 파손되어 현재는 가로 72cm, 세로 114cm, 두께 28cm, 무게 762kg 정도의 크기입니다. 재료는 화강섬록암으로 되어 있으며, 핑크빛이 도는 어두운 회색입니다. 화강섬록암은 화산암과 침적암이 섞인 암석으로서, 이집트에서는 드물게 나오는 암석입니다. 따라서 로제타스톤은 아마도 다른 지역에서 가져온 것으로 추측됩니다.

로제타스톤은 인류 역사와 문화의 보물입니다. 고대 이집트문자를 해독하는 열쇠가 되었으며, 고대 이집트왕의 통치와 정치를 알 수 있는 귀중한 자료입니다. 또한, 세 가지 언어로 쓰인 비석으로서 언어학과 비교문화학의 연구에도 기여하였습니다. 로제타스톤은 인류 문명의 발전과 다양성을 증명하는 유물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람세스2세의두상(4실)

🔗람세스2세의두상 🎧203

람세스 2세는 고대 이집트의 제19왕조의 제3대 파라오로서, 이집트의 황금시대를 이끈 위대한 왕이었습니다. 그는 기원전 1279년부터 기원전 1213년까지 약 66년간 통치하였으며, 자신의 아버지인 세티 1세와 어머니인 투야의 유일한 아들이었습니다. 그는 자신의 아버지가 죽은 후 25세에 왕위에 올랐으며, 자신의 누이인 네페르타리와 결혼하였습니다. 그는 총 8명의 왕비와 약 100명의 자녀를 두었으며, 그 중에서 가장 유명한 것은 네페르타리와 메렌프타입니다.

람세스 2세의 두상은 기원전 1250년경에 제작되었으며, 원래는 테베 근처에 있는 람세스 2세의 거대한 모기지인 라메시움에 위치하였습니다. 이 두상은 가로 2.08m, 세로 2.67m, 높이 1.7m, 무게 약 7톤에 달하는 엄청난 크기입니다. 이 두상은 화강암으로 만들어져 있으며, 얼굴과 귀는 잘 보존되어 있지만, 코와 입술은 파손되어 있습니다.

이 두상은 람세스 2세의 왕위를 상징하는 우라이우스(뱀 모양의 관)와 네메스(머리에 감는 천)을 쓴 모습을 보여줍니다. 얼굴은 젊고 잘생긴 왕의 모습을 표현하고 있으며, 당당하고 침착한 표정을 짓고 있습니다. 이 두상은 고대 이집트의 왕권과 신성함을 나타내는 훌륭한 예술작품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 두상은 1816년에 이집트에서 영국으로 운송되었습니다. 당시 영국의 외교관 헨리 솔트가 이집트에서 유물들을 수집하고 있었는데, 그는 라메시움에서 이 두상을 발견하고 구입하였습니다. 그러나 이 두상은 너무 커서 나일강에서 수송하기가 어려웠습니다. 결국 헨리 솔트는 이 두상을 대영박물관에 판매하였고, 대영박물관은 이 두상을 나일강에서 바다까지 운반하는 비용을 지불하였습니다. 이 과정에서 이 두상은 여러 번의 사고와 위험에 처하였으나, 결국 영국에 도착하였습니다.

이 두상은 현재 대영박물관의 고대 이집트실에서 볼 수 있습니다. 이실에는 로제타석과 함께 고대 이집트의 가장 유명하고 중요한 유물들 중 하나로 손꼽힙니다. 이 두상은 고대 이집트의 문화와 역사를 알 수 있는 귀중한 자료이며, 아름다운 조각미술의 걸작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아메노피스3세의 두상

🔗아메노피스3세의 두상 🎧205

아메노피스 3세의 두상은 고대 이집트의 파라오 아메노피스 3세의 거대한 석조 머리 부분으로서, 현재는 영국 런던의 대영박물관에 전시되어 있습니다. 이 두상은 기원전 1350년경에 제작되었으며, 원래는 아멘호텝 3세의 사원인 솔레브에 위치하였습니다. 이 두상은 가로 2.3m, 세로 2.9m, 높이 1.8m, 무게 약 4톤에 달하는 엄청난 크기입니다. 이 두상은 화강암으로 만들어져 있으며, 얼굴과 귀는 잘 보존되어 있지만, 코와 입술은 파손되어 있습니다.

이 두상은 아메노피스 3세의 왕위를 상징하는 우라이우스(뱀 모양의 관)와 네메스(머리에 감는 천)을 쓴 모습을 보여줍니다. 얼굴은 젊고 잘생긴 왕의 모습을 표현하고 있으며, 평화롭고 침착한 표정을 짓고 있습니다. 이 두상은 고대 이집트의 왕권과 신성함을 나타내는 훌륭한 예술작품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 두상은 1815년에 이집트에서 영국으로 운송되었습니다. 당시 영국의 외교관 헨리 솔트가 이집트에서 유물들을 수집하고 있었는데, 그는 솔레브 사원에서 이 두상을 발견하고 구입하였습니다. 그러나 이 두상은 너무 커서 나일강에서 수송하기가 어려웠습니다. 결국 헨리 솔트는 이 두상을 대영박물관에 판매하였고, 대영박물관은 이 두상을 나일강에서 바다까지 운반하는 비용을 지불하였습니다. 이 과정에서 이 두상은 여러 번의 사고와 위험에 처하였으나, 결국 영국에 도착하였습니다.

이 두상은 현재 대영박물관의 고대 이집트실에서 볼 수 있습니다. 이실에는 로제타석과 함께 고대 이집트의 가장 유명하고 중요한 유물들 중 하나로 손꼽힙니다. 이 두상은 고대 이집트의 문화와 역사를 알 수 있는 귀중한 자료이며, 아름다운 조각미술의 걸작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아시리아 조각(6실)

♟️4실6실10실23실17실18실24실
🎧209~212

♟️블랙 오벨리스크(6실)

🔗블랙 오벨리스크 🎧211

블랙 오벨리스크는 영국박물관에 전시되어 있는 고대 앗시리아의 유물입니다. 이 오벨리스크는 검은색 현무암으로 만들어진 사각형의 기둥 모양을 하고 있으며, 높이는 약 2미터입니다. 이 오벨리스크는 앗시리아의 왕 살만에셀 3세가 자신의 승리와 업적을 기념하기 위해 만들었습니다. 오벨리스크의 네 면에는 다섯 줄로 새겨진 그림과 글씨가 있습니다. 이 오벨리스크는 1846년에 영국의 고고학자 레이야드가 님루드에서 발굴하였습니다.

오벨리스크에 새겨진 그림과 글씨는 살만에셀 3세가 자신의 31년간의 통치 기간 동안 여러 나라들을 정복하고, 그들로부터 조공을 받았다는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총 14개의 나라가 오벨리스크에 언급되었으며, 그 중에서 가장 유명한 나라는 이스라엘입니다. 오벨리스크의 두 번째 줄에는 이스라엘의 왕 예후가 살만에셀 3세에게 조공을 바치는 모습이 그려져 있습니다. 예후는 아합 왕가를 멸망시키고 이스라엘의 왕이 된 인물로, 성경에서도 언급되었습니다. 예후가 바친 조공은 금, 은, 구리, 철, 그릇, 항아리, 막대기 등으로 구성되었습니다. 예후와 함께 있는 사람들은 모두 이스라엘인으로 추정되며, 그들은 살만에셀 3세를 향해 공손하게 인사하고 있습니다.

블랙 오벨리스크는 고대 앗시리아의 역사와 문화를 이해하는데 중요한 유물입니다. 또한 성경에서 언급된 인물과 사건을 고고학적으로 입증하는데도 큰 역할을 합니다. 오벨리스크는 앗시리아의 군사적인 위력과 정치적인 영향력을 보여주기도 하지만, 그들이 정복한 나라들의 다양성과 문화적인 교류를 보여주기도 합니다. 오벨리스크는 고대 역사의 한 장면을 생생하게 재현하는 작품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라마수(6실) (10실)

🔗라마수 🎧216

라마수는 대영박물관에 전시되어 있는 고대 메소포타미아 문명의 유물입니다. 라마수는 인간의 머리와 황소나 사자의 몸, 새의 날개를 가진 상상의 괴수로, 아시리아의 보호신이자 궁궐의 문지기로서 역할을 했습니다. 라마수는 앞다리에 날개가 돋친 황소나 사자의 몸에 수염이 성성하고 관모를 쓴 인간 남성의 머리를 한 짐승인간의 모습으로 정립되었습니다1. 라마수는 근간을 하늘에 두고 있는 성수로, 아시리아의 국가와 백성을 보호하는 수호신의 역할을 했습니다.

대영박물관에 있는 라마수 석상은 기원전 7세기에 제작된 것으로 추정되며, 높이는 약 4.5m, 길이는 약 5m입니다3. 이 석상은 원래 아시리아의 왕 티글라트-필레세르 3세가 자신의 궁전에 설치했던 것으로, 1847년에 영국의 고고학자 호르무즈드 라사드가 발견하고 영국으로 운반했습니다. 석상은 다섯 개의 다리를 가지고 있는데, 이는 정면에서 보면 네 개, 옆에서 보면 세 개로 보이게 하기 위한 것이라고 합니다5. 석상은 왕의 얼굴과 몸에 새겨진 문장들로 장식되어 있으며, 이 문장들은 왕의 업적과 신앙을 나타냅니다.

라마수는 고대 메소포타미아 문화와 신화를 이해하는데 중요한 유물입니다. 또한 아시리아의 군사적인 위력과 예술적인 수준을 보여주기도 합니다. 라마수는 고대 역사와 상상력의 결합된 작품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궁전성문(6실)

🔗궁전성문 🎧212

⭐아시리아(7실)

♟️4실6실10실23실17실18실24실
🎧213

♟️부조벽화(7실)

🔗23실
🔗영생의열매를 받는왕 🎧213

⭐아시리아(10실)

♟️4실6실10실23실17실18실24실
🎧214~216

♟️사자사냥(10실)

🔗사자사냥 🎧214 🎧215
왕의수호신214
전차와 잠수부대215

⭐그리스로마 조각(23실)

♟️4실6실10실23실17실18실24실
🎧243

♟️그리스로마 조각관(23실)

🔗23실
🔗웅크린 아프로디테상 🎧243

대영박물관에 있는 비너스상에 대해서 자세히 알려 드리겠습니다. 비너스상은 고대 로마의 사랑과 아름다움의 여신 비너스를 표현한 조각상으로서, 대영박물관의 그리스, 로마 전시관에 전시되어 있습니다. 이 조각상은 기원전 1세기에 제작되었으며, 원래는 이탈리아의 오스티아에서 발견되었습니다. 이 조각상은 대리석으로 만들어져 있으며, 높이는 2.18m입니다.

이 조각상은 비너스가 목욕을 마치고 옷을 입으려는 장면을 묘사하고 있습니다. 비너스는 오른손으로 가슴을 가리고, 왼손으로 하체를 가리고 있습니다. 얼굴은 부드럽고 고혹적인 미소를 짓고 있으며, 머리는 길고 곱게 빗어 넘겨져 있습니다. 몸매는 탄력있고 우아하며, 고대 그리스의 이상적인 여성미를 보여줍니다. 이 조각상은 고대 로마의 예술가들이 고대 그리스의 작품들을 모방하거나 재해석한 예시 중 하나로 간주됩니다.

이 조각상은 1775년에 영국의 외교관 찰스 토운슨이 구입하여 영국으로 가져왔습니다. 그는 이 조각상을 자신의 저택에 전시하였으나, 당시의 사회적인 풍조에 맞지 않는다고 생각하여 가슴과 하체를 가리는 천을 만들어 붙였습니다. 1805년에 그가 죽은 후, 그의 아들이 이 조각상을 대영박물관에 기증하였습니다. 현재는 천 없이 원래의 모습대로 전시되어 있으며, 많은 관람객들의 관심을 끌고 있습니다.

⭐네레이드기념관(17실)

♟️4실6실10실23실17실18실24실
🎧239 241 242

♟️네레이드기념관(17실)

🔗네레이드 기념관(17실)

⭐파르테논총괄(18실)

♟️4실6실10실23실17실18실24실
🎧250~269

♟️파르테논

⭐삶과 죽음(24실)

♟️18실24실25실27실33실95실1실40실
🎧160~168

♟️모아이석상(24실)

Hoa Hakananani’a
🔗모아이석상 🎧162

⭐아프리카(25실)

♟️18실24실25실27실33실95실1실40실
🎧170~187

♟️이페왕의 머리조각(25실)

🔗이왕의 머리조각 🎧184

⭐멕시코(27실)

♟️18실24실25실27실33실95실1실40실
🎧140~159

♟️쌍두사 모자이크(27실)

🔗쌍두사모자이크 🎧141
double-headed serpent mosaic

쌍두사는 아즈텍 문화의 조각으로, 두 개의 머리를 가진 뱀을 나무에 터키석 모자이크로 장식한 것입니다. 이 조각은 아즈텍 멕시코에서 만들어졌으며, 종교 의식에서 착용하거나 전시했을 것이라고 추측됩니다. 이 조각은 터키석, 가시 굴, 송곳 담홍색 조개 등으로 만든 모자이크로 되어 있습니다. 이 조각은 현재 대영박물관 27번 방에 전시되어 있습니다.

쌍두사의 형태는 파도치는 뱀의 몸과 양쪽에 있는 머리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한 덩어리의 향나무가 조각의 기본이 되었습니다. 뒷면은 비워져 있으며, 아마도 조각을 가볍게 하기 위한 것일 것입니다. 뒷면은 원래 금박으로 장식되었지만, 지금은 깨끗하고, 머리만 양면에 장식되어 있습니다. 쌍두사의 몸은 터키석 모자이크로 덮여 있으며, 가시 굴로 붉은 색을 더했습니다. 터키석은 작고 평평한 모자이크 조각으로 깨져서 송진으로 몸에 붙였습니다. 2,000개 의 작은 조각을 사용하여, 돌의 평평한 조각들이 다면적이고 곡선적인 표면인 것처럼 보이게 했습니다. 터키석은 돌 도구로 자르고 갈았습니다. 터키석 중 일부는 메소아메리카에서 약 1,600km 북서쪽에서 수입되었습니다. 그곳은 오아시스아메리카의 네모난 지역으로, 고대 푸에블로 사람들이 돌을 채굴했습니다. 쌍두사의 머리에는 눈을 위한 구멍이 있으며, 남아 있는 밀랍과 송진은 원래 눈을 나타내는 물체를 붙였을 수도 있습니다. 아마도 철광석 (바보의 금) 구슬일 것입니다. 머리에 있는 붉고 하얀색 세부 사항은 각각 굴과 담홍색 조개로 만들어졌습니다. 영리하게도, Spondylus princeps 껍질을 붙이는데 사용된 접착제는 붉은 색 산화철 (혈액석)로 색칠되어 디자인을 완성했습니다. 이빨에 사용된 하얀색 껍질은 식용 여왕 담홍색 조개의 껍질에서 왔습니다.

이 조각이 멕시코를 어떻게 나왔는지는 알 수 없지만, 스페인 왕권을 위해 멕시코 내륙을 점령한 정복자 에르난 코르테스가 얻은 물건 중 하나였을 가능성이 있다고 생각됩니다. 코르테스는 1519년에 현재 멕시코라고 하는 해안에 도착하고, 전투 후 1519년 11월 8일에 수도에 들어가서 아즈텍의 지배자 모테쿠마 2세 (몬테주마)의 존경을 받았습니다. 일부 출처에 따르면, 모테쿠마는 코르테스가 깃털 뱀 신 케찰코아틀이라고 생각하고 그에게 상응하는 대접을 했다고 합니다. [7] 하지만 매튜 레스탈과 같은 학자들은 이 생각은 선전용으로 사용된 스페인의 발명이라고 주장합니다. [8] 어느 쪽이든, 코르테스는 터키석 조각 등 가치 있는 선물을 여러 개 받았으며, 아마도 이 뱀도 그 중 하나였습니다. 선물과 평화로운 접대에도 불구하고, 모테쿠마는 코르테스에게 포로가 되었고, 그의 군대는 1521년에 모테쿠마의 수도 테노치티틀란을 점령했습니다. 아즈텍 사람들은 그들의 관대함에도 불구하고 잔인하고 체계적으로 노예화되고 살해되었습니다.

⭐중국,남아시아(33실)

♟️18실24실25실27실33실95실1실40실
🎧610~629

♟️타라여신(33실)

🔗타라여신 🎧611
BODHISATTVA TARA

BODHISATTVA TARA는 불교에서 중요한 인물로, 특히 티베트 불교에서 존경받는 여성 보살이다. 마하야나 불교에서는 여성 보살로, 미존불교에서는 여성 부처로 나타난다. 그녀는 “해방의 어머니”라고 불리며, 일과 성취에 있어서 성공의 덕목을 상징한다. 그녀는 중국 불교에서는 Duōluó Púsà (多羅菩薩), 일본에서는 Tara Bosatsu (多羅菩薩)라고도 알려져 있다.

BODHISATTVA TARA는 티베트 불교의 수행자들이 특정한 내면적 품질을 발전시키고, 자비 (karuṇā), 자애 (mettā), 공허 (shunyata)와 같은 외부, 내부, 비밀 가르침을 이해하기 위해 숭배하는 명상의 신이다. TARA는 보살이 종종 불교 방법의 구체화로 간주되기 때문에, 그녀는 동일한 품질의 다른 측면으로 이해될 수 있다. 대영박물관에 전시된 TARA의 여신은 스리랑카의 10세기 유물로, 평온, 건강, 행운의 여신으로 알려져 있다. TARA의 평온한 미소 덕분에 많은 사람들이 감명을 받고 있다. TARA의 여신에게는 손바닥, 발바닥 그리고 이마에도 눈이 있어서 이 세상의 모든 고통을 볼 수 있다고 한다.

BODHISATTVA TARA에 대해 간략하게 소개해 드렸습니다. 다양한 색상과 형태로 나타나는 그녀의 다른 모습들도 존재합니다. 대영박물관 33번 방에서 그녀의 조각상을 볼 수 있습니다. BODHISATTVA TARA에 대해 더 자세히 알고 싶다면, 다음 링크들을 참고하세요.

⭐중국도자기(95실)

♟️18실24실25실27실33실95실1실40실
🎧331~334

♟️꽃병(데이비드컬랙션)(95실)

🔗데이브드컬랙션 🎧331

대영박물관의 데이비드화병은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청화포슬린 중 하나로, 1351년에 만들어진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이 화병은 원래 중국의 한 도관에 제공된 것이었으나, 18세기에 영국의 백작인 토머스 엘긴이 약탈하여 가져왔습니다. 그 후, 1927년에 데이비드 경이 구입하여 대영박물관에 기증하였습니다. 이 화병은 그림과 글씨가 아름답고, 제작 연대가 명확하게 적혀 있어서 청화포슬린 연구에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데이비드화병은 두 개의 대형 화병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각각 높이가 63.8cm, 지름이 19.6cm입니다. 화병의 몸체는 푸른색으로 그려진 용과 구름이 장식되어 있고, 뚜껑은 연꽃 모양으로 되어 있습니다. 화병의 목 부분에는 코끼리 머리 모양의 손잡이가 달려 있고, 그 위에는 긴 헌사문이 적혀 있습니다. 헌사문은 다음과 같습니다.

“信州路玉山縣,順城鄉德教里荊塘社,奉聖弟子張文進,喜捨香炉花瓶一付,祈保合家清吉、子女平安。 至正十一年四月良辰謹記,星源祖殿胡淨一元帥打供。”

이 헌사문은 다음과 같이 해석할 수 있습니다.

“신주로 유산현, 순성향 덕교리 진탕사, 봉성제자 장문진, 기사향로화병일부, 기보합가청길, 자녀평안. 지정십일년사월량신근기, 성원조전호정일원수답공.”

즉, 이 화병은 1351년 4월에 장문진이라는 사람이 본인과 가족의 평안을 기원하면서 별관 성원(현재의 우원현)에 있는 도관의 원수인 호정일에게 바친 것임을 알 수 있습니다.

데이비드화병은 청화포슬린의 발달과 역사를 증명하는 귀중한 유물로 평가받고 있습니다. 이 화병은 원래 중국에서 만들어졌지만, 영국에서 보관되고 있다는 점에서 문화유산의 소유와 보호에 대한 논란도 일으키고 있습니다. 현재 이 화병은 대영박물관의 95호실에서 볼 수 있으며, 온라인으로도 감상할 수 있습니다.

⭐Enlightenment(1실)

♟️18실24실25실27실33실95실1실40실
🎧120~134

♟️디스코보로스(1실)

🔗디스크보로스 🎧135

디스코보로스에 대해 자세히 알려 드리겠습니다. 디스코보로스는 고대 그리스의 유명한 조각가 미론이 만든 동상으로서, 원반을 던지려는 운동선수의 모습을 표현하고 있습니다. 이 동상은 고대 그리스의 인체미와 운동미를 잘 보여주는 작품으로서, 인간의 자연스러운 자세와 균형감을 갖추고 있습니다. 이 동상은 원래 기원전 5세기에 제작되었으나, 현재 남아있는 것은 로마 시대에 복제된 것입니다. 대영박물관에서는 로마 시대에 만들어진 디스코보로스의 두 버전을 볼 수 있습니다.

디스코보로스는 손에 원반을 잡고 던지기 위해 몸을 회전할 준비를 하면서, 팔을 뒤로 빼고 체중을 오른발에 싣고 있는 자세의 운동 선수를 소재로 했습니다. 미론은 선수가 순간적으로 정지한 상태를 포착하였는데, 이와 같은 우아한 조화와 균형이 나타나는 행동의 순간을 ‘리스모스 (rhythmos)’라 일컬었습니다. 미론은 이 리스모스의 상태를 재현한 최초의 조각가로 평가받습니다.

디스코보로스가 몸을 비틀고 있는 이유는 해부학적으로 완벽한 모습의 인물과 운동감을 묘사하고 싶어했던 당대 조각가의 요구를 만족시켰기 때문입니다. 아무것도 걸치지 않은 운동선수들의 누드는 울퉁불퉁한 근육을 상세히 묘사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했습니다. 미론은 원반을 던지는 순간을 몸의 긴장된 힘과 섬세한 균형으로 전달하였습니다. 원반을 던지는 인물은 원반을 돌아보기보다는 평온한 표정을 짓고 있는데, 고대의 조각가들은 스포츠의 이상을 미학적으로 구현하기 위해 얼굴 표정보다는 몸의 형상에 초점을 두었습니다.

조각상의 비율은 오른쪽 넓적다리와 왼쪽 종아리, 몸통과 오른팔이 이뤄낸 각으로 강조되었습니다2. 이러한 비율은 고대 그리스에서 인간의 완벽함과 조화를 나타내는 황금비라고 알려진 비율과 일치합니다.

미론이 제작했던 원본 청동상은 실존하지 않으며, 디스코보로스 뿐만 아니라 미론이 제작한 모든 청동상은 전해지지 않습니다. 미론 뿐만 아니라 고대의 청동 조각상은 새로운 조각을 만들거나 전시에 무기를 만드는 데 녹여 썼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작품이 소실되기 전에, 고대 로마 시대의 조각가들이 부유층들의 수요에 맞춰 유명한 그리스 조각상들을 대리석과 청동으로 여러 복제품을 만들었습니다. 이렇게 탄생한 고대 로마의 복제품들은 그리스의 원본이 어떠했는지를 보여주는 중요한 증거가 되기도 합니다.

디스코보로스 역시 고대 로마에 제작된 청동 복제품이 존재합니다. <팔롬바라의 원반 던지는 사람 (Discobolus Palombara)>이라는 명칭의 이 청동상은 원본보다는 축소된 155cm 크기로 2세기 경에 제작된 것으로 추정되며, 1781년에 발굴되었습니다. 현재 독일 뮌헨의 고대 조각 미술관에 소장되어 있습니다.

디스코보로스는 대리석 복제품도 있는데, 그 중에서도 가장 유명한 것은 <타운리의 원반 던지는 사람> (Townley Discobolus)입니다. <팔롬바라의 원반 던지는 사람>이 발굴된 지 얼마 지나지 않은 1790년 하드리아누스 별장에서 발굴된 것으로, 로마의 미술감정가였던 토머스 젠킨스가 경매에 부쳐 찰스 타운리가 400파운드에 사들였습니다. 1805년 7월에는 타운리의 여타 대리석 조각품과 함께 영국 런던의 대영박물관이 매입해 지금까지 이곳에 소장되어 있습니다. 이 조각상은 머리 부분이 잘못된 각도로 놓여 있어, 원반을 돌아보기보다는 아래쪽을 향해 있는 것으로 복원되어 있습니다. 1948년 런던 올림픽 포스터의 소재가 되기도 하였으며, 2010년에는 내한하여 국립중앙박물관에서 전시되었습니다.

디스코보로스에 대해 자세히 알려 드렸습니다. 참고로, 이 설명은 다음과 같은 웹 검색 결과를 바탕으로 작성하였습니다. 감사합니다.

디스코보로스는 고대 그리스의 유명한 조각가 미론이 만든 동상으로서, 원반을 던지려는 운동선수의 모습을 표현하고 있습니다. 이 동상은 고대 그리스의 인체미와 운동미를 잘 보여주는 작품으로서, 인간의 자연스러운 자세와 균형감을 갖추고 있습니다. 이 동상은 원래 기원전 5세기에 제작되었으나, 현재 남아있는 것은 로마 시대에 복제된 것입니다. 대영박물관에서는 로마 시대에 만들어진 디스코보로스의 두 버전을 볼 수 있습니다.

디스코보로스는 고대 그리스 예술의 대표적인 작품으로서, 그리스 문화와 철학의 정신을 반영하고 있습니다. 디스코보로스는 인간의 완벽함과 조화를 나타내는 황금비라고 알려진 비율과 일치하며, 인간의 몸과 정신의 균형을 추구하는 그리스의 이상을 보여줍니다. 또한, 디스코보로스는 운동선수가 순간적으로 정지한 상태를 포착하였는데, 이와 같은 우아한 조화와 균형이 나타나는 행동의 순간을 ‘리스모스 (rhythmos)’라 일컬었습니다. 미론은 이 리스모스의 상태를 재현한 최초의 조각가로 평가받습니다.

디스코보로스는 고대 그리스 예술품 중에서도 매우 유명하고 영향력있는 작품입니다. 이 동상은 고대 로마 시대에도 많이 복제되었으며, 그 후에도 여러 예술가들에게 영감을 주었습니다. 예를 들어, 미켈란젤로는 디스코보로스를 보고 자신의 작품 <다윗상>에 영향을 받았다고 합니다. 또한, 디스코보로스는 스포츠와 관련된 작품으로서도 유명합니다. 1948년 런던 올림픽 포스터의 소재가 되기도 하였으며, 2010년에는 내한하여 국립중앙박물관에서 전시되었습니다.

디스코보로스는 왜 유명한지에 대해 설명해 드렸습니다. 참고로, 이 설명은 다음과 같은 웹 검색 결과를 바탕으로 작성하였습니다 . 감사합니다.

⭐중세유럽(40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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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0~505

♟️루스체스맨(40실)

🔗루이스체스맨 🎧502

The Lewis chessmen은 12세기에 만들어진 체스 조각들로, 1831년에 스코틀랜드의 루이스 섬에서 발견되었습니다. 이 체스 조각들은 바다코끼리 상아와 고래 이빨로 만들어졌으며, 중세 스칸디나비아의 문화와 사회를 반영하는 독특한 양식으로 조각되었습니다. 이 체스 조각들은 세계에서 가장 중요하고 잘 보존된 중세 체스 조각들 중 하나로 간주됩니다.

The Lewis chessmen은 총 78개의 조각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몇 개의 폰과 룩을 제외하면 네 개의 완전한 체스 세트를 만들 수 있습니다. 조각에는 왕, 여왕, 주교, 기사, 룩, 폰 등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이 체스 조각들은 원래 어디서 왔고 루이스 섬에 어떻게 도착했는지 확실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가장 유력한 이론은 노르웨이의 트론헤임에서 1150년에서 1200년 사이에 만들어진 것이라는 것입니다. 이는 트론헤임이 중세 시대에 바다코끼리 상아 조각의 중심지였고, 비슷한 양식의 여왕 조각의 파편이 현지 교회에서 발견되었으며, 체스 조각들의 왕좌에 있는 장식이 중세 노르웨이 교회의 조각과 유사하기 때문입니다.

체스를 즐기던 귀족들이 이 체스 조각들을 소유하고 있었을 가능성이 있습니다. 7세기 인도에서 시작된 체스는 중동을 거쳐 유럽으로 전파되었고, 조각의 양식은 왕실의 직위를 반영하는 인물화로 변화하였습니다. 체스는 귀족들에게 인기가 있었고, 교회의 일부 사람들은 이 게임을 비난했지만, 결국 귀품과 기사도와 연관되었습니다.

체스 조각들의 주인은 누구인지 알 수 없습니다. 노르웨이에서 아일랜드로 가서 팔려고 했던 상인이 소유했고, 루이스 섬에 들른 것일 수도 있습니다. 이는 보물에 거의 네 개의 세트가 포함되어 있고, 사용 흔적이 없기 때문입니다. 다른 이론은 섬의 현지 귀족들을 위해 만들어진 것이라는 것입니다. 하지만 언제나 왜 묻혔는지는 아무도 확실하게 알 수 없습니다. 소가 보물을 발견한 선원에게 보여준다거나, 살인 사건이 있었다거나 하는 여러 가지 이야기가 있습니다. 확실한 것은 1831년 4월 11일 전에 발견되었다는 것입니다. 그 때 스코틀랜드 고고학 협회에서 전시되었습니다.

The Lewis chessmen은 현재 대영박물관과 스코틀랜드 국립박물관에서 각각 82개와 11개를 소장하고 있습니다. 이 체스 조각들은 중세 체스의 발달과 역사를 증명하는 귀중한 유물로 평가받고 있습니다. 이 체스 조각들에 대해 더 자세한 정보와 사진은 다음의 링크들을 참고하세요.

⭐서튼후,유럽(41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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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튼후의 보물(41실)

🔗서튼후의 보물 🎧456
🔗헬멧

서튼후의 보물은 영국 서퍽의 서튼후에서 발견된 앵글로색슨의 미라와 유물들입니다. 이 보물들은 6세기와 7세기에 매장되었으며, 앵글로색슨의 예술과 역사에 대해 많은 정보를 제공합니다. 서튼후의 보물 중 가장 유명한 것은 선박 매장이며, 이곳에서는 풍부한 금속 공예품과 장식된 투구, 방패, 검 등이 발견되었습니다. 이 선박 매장은 아마도 동앵글인의 왕 래드왈드의 무덤일 것이라고 추측됩니다. 서튼후의 보물은 현재 대부분 대영박물관에서 전시되고 있으며, 앵글로색슨의 문화와 종교를 살펴볼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합니다. 서튼후의 보물에 대해 더 자세히 알고 싶다면, 다음 링크들을 참고하세요.

⭐로만 브리튼(49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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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덴홀의 대형접시(49실)

🔗밀덴홀의 대형접시 🎧454

밀덴홀의 대형접시는 로마 시대의 은제 식기로서, 4세기에 제작되었다고 추정됩니다. 이 접시는 영국 써포크의 밀덴홀에서 1942년에 발견되었으며, 대영박물관이 구입하여 소장하게 되었습니다. 이 접시는 지름이 60cm이고 무게가 8kg이나 되는 매우 크고 무거운 접시입니다.

이 접시의 가장 특징적인 것은 그 중앙에 있는 동그라미 안에 그려진 대양의 신 넵투네스의 모습입니다. 넵투네스는 사람의 몸과 수염을 가지고 있으며, 손에 삼지창을 들고 있습니다. 그의 머리 위에는 돌고래와 바다말이 있으며, 그의 몸은 물결과 물방울로 둘러싸여 있습니다. 이 모습은 넵투네스가 바다를 지배하고 통제하는 신이라는 것을 상징합니다.

이 접시의 가장자리에는 로마 신화에 등장하는 여러 신들과 인물들의 모습이 조각되어 있습니다. 예를 들어, 아폴론, 디오니소스, 헤라클레스, 아테나, 아프로디테 등이 있습니다. 이들은 각각 자신의 특징적인 속성을 가지고 있으며, 로마 문화와 종교를 잘 보여줍니다.

이 접시는 로마 제국의 부와 권력을 나타내는 작품으로서, 아마도 로마 황제나 귀족들의 식사나 의식에 사용되었을 것으로 추측됩니다. 이 접시는 고급스러운 장식과 정교한 기법으로 만들어져 있으며, 로마 예술과 문화의 수준을 잘 보여줍니다.

♟️아우구스투스의 청동두상

🔗아우구스투스의 청동두상 🎧542

대영박물관에 소장된 아우구스투스의 청동두상에 대해서 알려 드리겠습니다. 아우구스투스는 로마 제국의 초대 황제로서, 로마의 평화와 번영을 이끌었으며, 그의 이름과 칭호는 이후의 모든 황제들에게 계승되었습니다. 아우구스투스는 자신의 통치를 기념하기 위해 많은 조각상과 동전을 만들었으며, 그 중에서도 청동으로 만든 두상은 그의 권위와 위엄을 잘 보여주는 작품입니다.

대영박물관에 있는 아우구스투스의 청동두상은 기원전 27년부터 기원후 14년까지 재위한 아우구스투스의 초상을 담고 있습니다. 이 두상은 높이가 34.5cm이며, 원래는 풀 사이즈의 동상의 일부였습니다. 이 두상은 1910년에 이집트의 미르리나에서 발견되었으며, 대영박물관이 구입하여 소장하게 되었습니다. 이 두상은 아우구스투스가 젊고 건강하며, 정신적으로도 강하고 굳건한 인상을 주도록 표현되었습니다. 머리카락은 정교하게 조각되었으며, 얼굴은 부드럽고 고혹적인 미소를 짓고 있습니다. 목에는 코린토스식 갑옷을 걸치고 있으며, 가슴에는 새겨진 장식이 있습니다. 이 장식은 아우구스투스가 로마의 수호신인 마르스와 비너스의 후손이라고 주장하는 것을 상징합니다.

아우구스투스의 청동두상은 그의 통치기간 동안 만들어진 다른 작품들과 비슷한 양식을 보여줍니다. 예를 들어, 프리마 포르타에서 발견된 아우구스투스 동상 이나, 바티칸 박물관에 있는 아우구스투스 동상등이 그러합니다. 이러한 작품들은 아우구스투스가 자신을 로마 제국의 창시자로서, 공화주의적인 전통과 신성한 계보를 계승하는 자로서 표현하고자 한 것으로 해석됩니다. 아우구스투스는 자신의 이미지를 통해 로마인들에게 평화와 번영, 그리고 권위와 존경을 주입하려고 하였습니다.

⭐로마제국(70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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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틀랜드꽃병(70실)

🔗70실
🔗포틀랜드꽃병 🎧542

포틀랜드 꽃병은 대영박물관에 전시되어 있는 로마 카메오 유리 화병으로, 고대 로마의 예술과 역사를 담고 있는 희귀한 작품입니다. 이 꽃병은 서기 1년에서 25년 사이에 만들어졌으며, 보라색-파란색 유리에 흰색 유리 카메오로 장식되어 있습니다. 카메오에는 인간과 동물, 신화적인 존재들이 두 개의 장면을 이루고 있습니다. 이 장면들의 의미는 여러 가지 해석이 있지만, 확실한 것은 아니라고 합니다. 포틀랜드 꽃병은 그 당시 만들어진 몇 안되는 꽃병 중 하나로, 그 제작 기법과 조형미가 매우 높이 평가됩니다. 이 꽃병은 1600년대에 로마에서 발견되었으며, 18세기에 영국의 포틀랜드 백작이 소유하게 되었습니다. 그 후에 여러 번의 소유자 변경과 파손, 복원을 거쳐 1810년부터 대영박물관에 보관되었습니다. 이 꽃병은 18세기와 19세기에 유리와 도자기 제작자들에게 큰 영감을 주었으며, 특히 웨지우드의 제품들이 유명합니다.

⭐이집트죽음과사후세계(63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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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자의서(62실)

🔗사자의서 🎧365

사자의 서는 고대 이집트의 무덤에서 발견된 사후 세계에 관한 안내서로서, 파피루스나 피혁에 교훈이나 주문, 신에 대한 찬가 등이 상형문자로 기록된 문서의 모음입니다. 사자의 서는 고대 이집트인들이 죽음을 인생의 다음 단계로 보고, 영생을 얻기 위해 필요한 지식과 방법을 담은 것으로 해석됩니다. 사자의 서는 일정한 형식이나 내용이 정해져 있지 않았으며, 각각의 미라에 맞추어 개별적으로 제작되었습니다. 따라서 사자의 서는 고대 이집트의 종교와 문화를 연구하는데 매우 중요한 자료가 됩니다.

사자의 서는 기원전 16세기부터 기원후 4세기까지 약 2천년에 걸쳐 사용되었으며, 그 기간 동안 변화와 발전을 거쳤습니다. 가장 오래된 형태의 사자의 서는 피라미드 문장이라고 불리는 것으로, 피라미드 안에 새겨진 주문들입니다. 이 주문들은 왕을 위해 쓰여졌으며, 왕이 죽은 후에도 신들과 함께 살 수 있도록 도와주었습니다. 이후에는 관 안에 놓인 관문장이라고 불리는 것으로 발전하였습니다. 이 주문들은 왕뿐만 아니라 귀족이나 관리들도 사용할 수 있었으며, 관 안의 벽이나 물건들에 쓰였습니다. 이 주문들은 사후 세계에서 마주칠 수 있는 위험과 장애를 피하거나 극복하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기원전 18세기부터는 파피루스나 피혁에 주문들을 쓰기 시작하였습니다. 이것이 바로 사자의 서로 알려진 형태입니다. 이 주문들은 미라와 함께 매장하거나 관 안에 넣었으며, 미라가 사후 세계에서 재판을 받고 영생을 얻을 수 있도록 도와주었습니다. 이 주문들은 각각의 미라에 맞게 선택하거나 수정하였으며, 때로는 미라의 이름이나 직업 등을 적기도 하였습니다. 이 주문들은 상형문자로 쓰였으며, 때로는 그림이나 색칠도 함께 하였습니다.

사자의 서는 일반적으로 다음과 같은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 사후 세계로 가는 길에 마주치는 신들과 괴물들에 대한 설명과 그들과 대화하는 방법
  • 사후 세계에서 재판을 받기 위해 필요한 지식과 답변
  • 사후 세계에서 영혼이 변신할 수 있는 모습과 방법
  • 사후 세계에서 생활하기 위해 필요한 음식과 음료, 옷과 장신구 등
  • 사후 세계에서 행복하고 평화롭게 살 수 있는 기원과 축복

대영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는 사자의 서는 현재 가장 완벽한 형태로 남아있는 판본입니다. 이 사자의 서는 기원전 1250년경에 제작되었으며, 미라의 이름은 아네이라고 합니다. 이 사자의 서는 약 37m의 길이에 200여 개의 주문과 그림이 담겨 있습니다. 이 사자의 서는 1848년에 이집트에서 발견되어 대영박물관으로 옮겨졌으며, 현재는 2층 63번 전시실에서 볼 수 있습니다

♟️동물미라(62실)

🔗동물미라 🎧368

♟️미라 항아리 카누푸스

🔗미라항아리카누푸스 🎧

미라 항아리 카누푸스는 고대 이집트의 미라화 과정에서 사용되었던 항아리로서, 미라의 내장을 보관하기 위해 만들어진 것입니다. 이 항아리는 보통 4개가 한 세트로 되어 있으며, 각각의 뚜껑에는 미라의 장기를 수호하는 신들의 모습이 조각되어 있습니다. 이 신들은 후르스의 네 아들로 알려져 있으며, 각각 다음과 같은 장기와 연관되어 있습니다.

  • 휘베후 (Hapi): 코끼리머리를 한 신으로, 폐를 수호합니다.
  • 두아무테프 (Duamutef): 개머리를 한 신으로, 위를 수호합니다.
  • 케베센우프 (Qebehsenuef): 매머리를 한 신으로, 창자를 수호합니다.
  • 임세티 (Imseti): 인간머리를 한 신으로, 간을 수호합니다.

이 항아리들은 미라화 과정에서 중요한 역할을 했습니다. 미라화 과정은 다음과 같이 이루어졌습니다.

  • 시체의 뇌는 코나 기타 구멍을 통해 제거하고, 내장은 배를 가르고 꺼내었습니다.
  • 내장은 소금과 향료로 처리하여 건조시키고, 4개의 카누푸스 항아리에 나누어 담았습니다.
  • 시체는 소금과 향료로 40일 동안 절제하였습니다. 이 과정에서 시체의 수분이 제거되고, 부패가 방지되었습니다.
  • 절제된 시체는 석유와 향료로 발라주고, 리넨 천으로 감싸주었습니다. 이 때, 천 사이에 보석이나 부적 등을 넣기도 하였습니다.
  • 감싼 시체는 관에 넣고, 관에는 죽은 자의 이름이나 신화 등이 그려졌습니다.

대영박물관에는 약 140개의 미라와 카누푸스 항아리가 전시되어 있습니다. 이들은 고대 이집트의 종교와 문화, 생활과 의학을 연구하는데 귀중한 자료가 됩니다. 대영박물관에서는 미라와 카누푸스 항아리를 스캔하여 그 안에 들어있는 장기나 물건들을 볼 수 있도록 하였습니다

♟️캐이트벳 미라 (63실)

🔗케이트벳 미라 🎧361

미라(Mummy)는 고대 이집트에서 죽은 사람의 영혼이 육체로 돌아올 수 있도록 시체를 보존하는 방법입니다. 미라는 보통 몸을 건조시키고 붕대로 감아서 관에 넣었습니다. 미라는 이집트의 종교와 문화에 깊은 관련이 있습니다. 대영박물관에는 약 140개의 미라가 전시되어 있으며, 그 중 하나가 바로 카테벳(Katebet)의 미라입니다.

카테벳은 기원전 1300년경에 살았던 이집트의 고위 관리였습니다. 그녀는 테베(Thebes)의 신전에서 성직자들을 도왔고, 왕실의 음악가와 무용가로도 활동했습니다.

카테벳의 미라는 목과 가슴 부분이 파손되어 있습니다. 이는 고대 이집트인들이 미라를 만들 때 사용한 도구나, 나중에 미라를 약탈하려고 한 사람들이 남긴 흔적일 수 있습니다. 카테벳의 미라는 관 안에 들어있는데, 관은 나무로 만들었고, 푸른색과 황금색으로 장식했습니다. 관의 표면에는 카테벳의 모습과 신들의 모습이 그려져 있습니다. 관의 안쪽에는 카테벳이 죽음 후에도 잘 지내기를 바라는 문구가 적혀 있습니다.

카테벳의 미라는 고대 이집트인들이 죽음과 영생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고, 어떻게 준비했는지를 알 수 있는 귀중한 유물입니다. 카테벳은 자신의 신분과 직업을 자랑스럽게 여겼고, 신들과 왕에게 충성을 다하려고 했습니다. 그녀의 미라와 관은 그녀의 삶과 믿음을 반영하고 있습니다.

♟️빨간머리 미라 진저(64실)

🔗빨간머리미라 진저 🎧352

빨간머리 미라 진저는 대영박물관에 전시되어 있는 이집트 미라 중 하나입니다. 그는 기원전 18세기에 살았던 제사장이었으며, 그의 이름은 Hornedjitef라고 합니다. 그의 관은 매우 화려하게 장식되어 있으며, 관 안에 그려진 그림은 하늘의 여신 Nut과 죽음의 신 Osiris를 상징합니다. 그는 죽은 후에도 Nut의 품 안에서 Osiris와 함께 환생할 것이라고 믿었던 것 같습니다.

진저의 얼굴은 관 위에 붙여진 페인팅 마스크로 만들어졌습니다. 이 마스크는 왁스와 페인트로 칠해져 있으며, 빨간머리와 파란색 눈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 마스크는 진저의 실제 얼굴을 반영한 것이 아니라, 이집트인들이 생명력과 건강을 상징하는 색으로 인식했던 것입니다.

진저의 미라는 대영박물관에서 CAT 스캔을 통해 연구되었습니다. 스캔 결과, 진저는 40대에서 50대 사이의 나이로 사망했으며, 심장과 폐에 문제가 있었던 것으로 밝혀졌습니다. 또한 그는 치아가 많이 부패하고 있었으며, 이는 당시 이집트인들이 섭취하던 곡물에 섞여있던 모래 때문이라고 추정됩니다

⭐고대 이란(52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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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옥서스 보물(52실)

🔗옥서스 보물 🎧423
Oxus Treasure

⭐브리튼 기원전(50실)

♟️1실40실41실49실70실63실52실50실

♟️린도인간(50실)

🔗린도인간 🎧444

린도인간은 영국의 린도 늪에서 발견된 철기시대의 늪지 시신입니다. 그는 서기 2세기에 살았던 남성이었으며, 그의 몸은 물이끼에 의해 잘 보존되었습니다. 그는 목을 찔리고 교살 기구에 목이 졸려 죽었으며, 이는 그가 제물이나 처형의 대상이었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그의 몸에서는 식사한 흔적과 건강 상태, 사망 당시의 환경 등에 대한 많은 정보가 얻어졌습니다. 그는 현재 대영박물관에 전시되어 있으며, 고대 유럽의 문화와 역사를 이해하는데 도움이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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